구글 인공지능이 이세돌 9단을 누른 '알파고 쇼크' 이후 한국 사회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정보화 혁명에 한발 앞섰지만, 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이 빚어내는 4차 산업혁명에는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새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산업현장이다. 조선비즈는 새해 기획으로 4차산업 생생현장 7곳을 다녀왔다. 새 길을 개척하느라 분주한 현장에서 정치·정책 리더십의 실종과 사교육 창궐, 규제 난맥을 타파할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편집자주]

지난달 27일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국내 1위 공작기계 업체 현대위아의 파이럿 센터(실험센터). 한 연구원이 아이패드를 터치하자, 1만1000km 이상 떨어진 미국 일리노이주 공장에 배치된 CNC선반, 머시닝센터 등 공작기계(工作機械·기계나 기계 부품을 만드는 기계)들이 가동하기 시작했다. 태블릿PC 하나로 수백 대의 공작기계들을 제어한 것이다.

기계에 부착된 각종 센서는 사물인터넷(IoT) 통신망을 통해 각종 데이터들을 중앙 서버로 보내기 시작했다. 태블릿PC의 모니터링 화면에서는 약 2초 마다 기기의 생산량, 가동률, 기기 이상여부 등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공장 운영자가 언제 어디서든지 스마트폰과 태블릿PC만 있으면, 공장 가동 상황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위아 연구원이 아이패드를 통해 CNC선반 기기를 작동시키는 모습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중심축으로 ‘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팩토리는 센서와 소프트웨어(SW)를 통해 기계가 스스로 생산하고 공정을 통제하며 작업장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똑똑한 공장을 말한다.

현대위아는 2017년 상용화를 목표로 생산시설의 원격 명령·제어·관리가 가능한 현대-머신모니터링시스템(HW-MMS)과 CNC제어기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말 개발을 완료하고 최근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 ‘초연결’ 제4차 산업혁명의 스마트팩토리…스마트폰 1대면 공장관리 ‘끝’

제조업 현장에서 스마트팩토리의 가장 큰 화두는 ‘원격 관리’다. 제조업에서 ‘시간’, ‘공작기계의 가동률’은 곧 돈이다. 각각의 공작기계가 멈춤 없이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생산량이 극대된다. 스마트팩토리는 공작기계가 멈춰 돌아가지 않는 ‘다운타임(Down time)’을 최소화한다.

HW-MMS는 클라우드 서버를 이용해 사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PC와 태블릿, 스마트폰을 이용해 공작기계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현재 장비가 원활히 가동하는지와 어떤 제품을 어느 정도 완성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덕분에 공작기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곧바로 진단과 정비가 가능하다. 경남 창원시 현대위아 기술지원센터가 HW-MMS로 연결된 장비를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숙련공이 화상으로 정비를 실시한다.

현재 현대위아는 HW-MMS를 전 세계 32개 공장에 배치된 292대 공작기계와 연동해 시험 가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공장은 MMS을 도입하면서 효율이 크게 향상됐다. 직원들의 근무시간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생산량은 약 20% 증가했다. 에너지 소비 역시 기존 공장 대비 30% 정도 줄었다. 이는 원가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김인수 현대위아 제어개발실 이사는 “스마트팩토리가 구현되면 각 공장에서 수집한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그는 “이런 운영 체계를 데이터 기반 공장 운영체계(Data Driven Operation)라고 하는 데, 이를 통해 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상과 문제들의 상관관계를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숙련공도 찾기 어려웠던 돌발 장애와 품질 불량의 원인을 공작 기계로부터 받은 빅데이터를 확인하거나 고장 직전의 부품을 미리 찾아내 대형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이경한 현대위아 소프트웨어(SW) 연구팀장은 “오랜 시간 기술을 축적한 숙련공들의 경험을 데이터화해 초보 작업자의 효율을 높이는 데 쓸 수도 있다”며 “스마트팩토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위아 개발한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공작기계와 소프트웨어의 모습

◆ 소프트웨어 인력 대거 추가

CNC제어기는 부품 설계와 가공에 필수적인 공작 기계다. 현대위아는 지멘스와 함께 공동으로 만든 CNC제어기인 현대 아이트롤(HD iTROL)에 각종 스마트 기능을 추가했다.

일정 시간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전원을 차단해 전력소모를 최소화하고 소모품 사용기한을 늘리는 ‘에너지 저감 기능’,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던 공구의 마모 정도와 파손 상태를 제어기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공구&스핀들 모니터링 기능’ 등 경쟁사에는 없는 다양한 SW 기능을 자랑한다.

이러한 기능을 마련하기 위해 현대위아는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신설하고 개발자 영입을 추진했다. 현재 소프트웨어 개발팀은 약 50여명의 개발자가 근무하고 있다.

이 밖에 현대위아는 그동안 복잡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개발해야 했던 가공물 데이터를 일반인도 쉽게 만들 수 있는 ‘형상 가공물 대화형 프로그램 생성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성공했다.

김인수 현대위아 제어개발실 이사는 “과거 공작기계의 경쟁력으로 정밀도, 내구성 등 HW 성능이 우선시됐다면, 이제는 HW 성능은 기본이고 SW 경쟁력이 최고의 경쟁력”이라며 “아직 선행연구 단계지만 미래에는 5세대(5G),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첨단 기술을 도입해 기계가 스스로 생각해 판단하는 공작기계들도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284조원’ 놓고 세계는 스마트팩토리 전쟁중…韓 “생산인구 절벽의 대안”

현대위아 실험 센터 한쪽에서는 로봇팔이 쉼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현대위아가 개발한 이 로봇팔은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구멍을 뚫는 천공작업을 마친 휠을 다음 공장으로 이동시키는 로봇이다.

현대위아 측은 인공지능 기술을 더해 스스로 학습하는 로봇팔 연구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한번 작업하는 법을 가르쳐주면 로봇팔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로봇팔 하나가 다목적으로 여러가지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에서 벌어진 스마트 팩토리 경쟁에 투입될 현대위아의 비장의 무기 중 하나다.

글로벌 스마트팩토리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표준협회에 따르면 2014년 207조9768억원이던 IoT 기반의 스마트팩토리 시장은 2018년 284조8680억원 규모로 37%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산업 자동화로 기존 생산시설을 대대적으로 교체 중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경우 전 세계 스마트팩토리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실제 지난해 중국 기업 약 56%는 매출의 10% 이상을 스마트팩토리 분야에 투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정부 주도의 ‘중국제조2025’ 전략을 수립하고, 강력한 내수 시장 등을 바탕으로 공장기계 등 생산설비를 교체하면서 스마트팩토리 구현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국가”라며 “중국의 스마트팩토리 시장규모는 올해 혹은 내년 유럽 시장을 추월하고 2019년에는 미국 시장보다 앞서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현대위아가 개발한 로봇팔 기기가 완성된 자동차 휠을 보관대로 이동시키는 모습

우리나라 정부도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발표하면서, 국내 중소·중견 제조업의 스마트 팩토리 구축 지원에 나섰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1만개의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정부는 반월·시화산단을 미래형 공장 모델이 될 수 있도록 IoT, CPS 등 첨단 스마트 제조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팩토리 테스트 베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에는 지멘스, LG산전, 현대위아, 액센츄어, KT 등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자료:산업은행

박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민관합동 스마트공장 추진단장)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산업 선진국들도 일찌감치 제조혁명을 목표로 정교한 스마트 팩토리 정책 수립해 움직이고 있다”면서 “스마트 팩토리는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제조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국내 생산가능 인구수(15세~64세)는 초저출산에도 불구하고 매년 증가하다 올해 3704만명을 기점으로 내리막을 걷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마트팩토리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부족해지는 인적 자원 문제를 해결하는 필수 사항”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