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소를 샀더니 과자를 덤으로 줬다." "질소는 과자가 아닙니다." 제과 업계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된 과대 포장을 조롱하며 소비자들이 하는 말들이다. "봉지 과자를 샀더니 내용물이 터무니없이 적어 황당했다"는 지적은 최근 몇 년간 계속돼 왔다. 2010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물놀이를 하다 사람이 빠졌는데 구할 도구가 없다면 대용량 과자 봉지를 활용하라"며 "적은 용량의 과자 봉지 3개 정도를 안으면 물에 뜰 수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이모(여·34)씨는 "마트에서 사온 과자를 뜯었더니 내용물이 3분의 1도 되지 않아 허탈했다"며 "국내 과자 회사들의 꼼수가 얄미워 인터넷에서 수입 과자를 주문해 먹는다"고 말했다.

본지는 의료 기기 제조 업체 '디알텍'에 의뢰해 시중에서 판매하는 6개 업체 봉지 과자 10종을 X-레이로 찍어봤다. 일반적으로 과자 봉지에는 내용물의 중량(g)이 표기되지만 포장된 것에 비해 내용물이 얼마나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뜯어보기 전에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시중에서 파는 과자들을 X-레이 촬영한 사진. 유통 과정에서 부서지기 쉬운 감자칩 종류는 특히 부피가 적어 보였다(아래 사진은 가나다순).

대부분 "공기 반 과자 반"

X-레이 촬영 결과, 포장 용기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과자가 대부분이었다. 꽃게랑(빙그레), 도도한나쵸(오리온), 도리토스(롯데), 콘초·C콘칲(크라운) 등은 절반가량이었고, 허니버터칩(해태), 포테토칩·수미칩(농심), 스윙칩(오리온) 등 감자칩 종류는 절반 이하만 차 있었다. 과자를 세워 내용물이 아래쪽에 몰리게 한 뒤 눕혀서 찍은 것을 감안하면 소비자가 봉지를 뜯었을 때 체감하는 과자의 양은 더 줄어들 수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행 '스낵류 포장 규칙'은 질소 충전을 하는 봉지 과자의 빈 공간이 35%를 넘길 수 없도록 돼 있다. 봉지의 최소 65%는 과자로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11월 '소비자시민모임'이 국내 시판 중인 감자칩들을 조사한 결과 질소 충전을 한 과자 8종 모두 빈 공간이 35%를 웃돌았다. 빈 봉지 안에 구슬을 가득 채운 뒤 그 구슬을 2000mL짜리 실린더에 부어 봉지의 부피를 구하고, 실제 봉지 안에 있던 과자를 다시 빈 실린더에 부어 과자의 부피를 재는 방식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수미칩은 41.2%, 포테토칩은 37.5%, 허니버터칩은 36.7%가 질소로 차 있었다.

과자 회사들은 "모두 법적 기준을 충족한 제품"이라고 대답했다. 공인 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소(KCL)에서 적합 판정을 받거나, 심지어 기준치보다 빈 공간을 훨씬 더 줄인 제품들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과자 회사가 채워 넣은 과자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과자 회사들은 그 답을 유통 과정에서 찾고 있다. 제과 업체에서 측정한 빈 공간은 제품 생산 직후, 과자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보존됐을 때 기준이다. 이 과자들이 유통 과정에서 부서지면서 빈 공간 사이로 들어가면 그만큼 봉지 내 빈 공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X-레이 촬영을 한 과자 중에서 특히 감자칩의 양이 적어 보이는 이유도 그만큼 부서지기 쉽기 때문이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은 "제과 업체는 유통 과정에서의 제품 손상까지 감안해 손상을 최소화할 포장 기술을 개발할 책임이 있다"며 "마트나 편의점에서 큰 포장 봉지만 보고 과자를 산 소비자들은 속은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봉지의 65% 이상 채워야" 규정

우리나라에서 질소 충전식 과자 포장을 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부터다. 그전에는 공기를 그대로 주입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과자 냄새가 이상하다'는 항의가 들어오곤 했다. 과자에 묻은 기름기가 산소와 만나면 산패(酸敗)돼 불쾌한 냄새가 나거나 눅눅해지기 쉽다. 봉지 내부에 있는 산소를 순수한 질소로 바꿔 넣는 질소 충전 포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문제는 해결됐다.

KCL 패키징기술센터 문병근 연구원은 "질소 포장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자의 변질을 막기 위해서"라며 "과자가 부서지지 않게 보호하는 역할은 2차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제과 업체 연구원 A씨는 "제품 변질과 관련해서는 내부 기체 중 순수한 질소 성분이 얼마나 되는지 관련이 있지 빈 공간과는 상관이 없다"며 "빈 공간 자체는 과자가 으스러지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제과 업체에서는 환경부에서 제시한 기준인 '빈 공간 35%'에 맞춰 생산할 뿐"이라고 했다.

"과자가 부서지지 않기 위해 빈 공간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는 봉지 내 빈 공간을 더 줄일 수 있다. 최근 제과 업계에서 소비자 여론을 의식해 과자 중량을 늘리거나 포장 크기를 줄여 결과적으로 빈 공간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2014년 국내 제과 업체들의 과대 포장에 항의해 대학생 두 명이 국산 봉지 과자를 이어 붙여 한강에 띄운 뒤 뗏목처럼 올라타 강을 건너는 시위를 벌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소비자들 사이에서 국산 과자 불매운동이 일고 수입 과자 열풍이 불 정도로 이 시위의 파장은 컸다.

봉지 과자 타고 한강 건너기도

뗏목 제작에 쓰였던 포카칩(오리온)은 지난해 9월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중량을 10% 늘렸다. 오리온 관계자는 "제조 과정에서 빈 공간 기준을 자체적으로 25%로 잡아 환경부 기준보다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며 그러나 "빈 공간을 줄여 생산하다 보니 '과자가 부서진다'는 항의가 종종 들어온다"고 했다. 롯데제과 역시 지난해 3월 꼬깔콘의 빈 공간을 2%포인트 줄였다. 빙그레 측은 "꽃게랑은 1986년 처음 생산한 이후 30년째 봉지 크기와 중량을 똑같이 유지해왔지만 최근 포장 봉지 크기를 줄일지 여부를 논의 중"이라며 "새로 출시한 '꽃게랑 고추냉이맛'은 과대 포장 논란을 의식해 봉지 크기를 1㎝ 줄였다"고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직장인 김모(여·30)씨는 "과자가 부서지지 않도록 질소를 넣는 것이라 해놓고는 '유통 과정에서 과자가 으스러져 부피가 줄어 보이는 것'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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