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계가 점점 빚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한 해 사이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빚이 증가하는 속도가 2.7배 빨랐다. 소득 증가율은 2013년 이후로 해마다 4%→2.4%→2.4%로 정체되는 반면, 부채 증가율은 3.3%→3.4%→6.4%로 급격하게 치고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빚을 갚기 위해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매느라 내수(內需) 부진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금리 상승기가 다가올 것으로 예고돼 있어 이자 부담을 못 이기는 가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한계 상황을 맞아 쓰러지는 가구가 속출하면 대출해준 금융회사들도 흔들리는 구조적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가계 금융·복지 조사는 통계청·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가계 상황을 정밀하게 점검해 매년 발표하고 있다. 표본은 2만가구다.

빚 있는 가구의 평균 부채 1억원 넘어

가계당 빚은 전국 평균으로 6655만원이다. 하지만 빚을 안고 있는 가계(전체 64.5%)로 좁혀보면 한 집당 부채가 올 들어 처음으로 1억원을 돌파해 1억317만원에 달한다. 재테크 차원에서 집을 사거나 턱밑까지 차오른 전셋값을 못 이겨 집을 구입하려고 빚을 낸 사람이 많다. 담보·신용대출을 갖고 있는 가구의 59.1%가 '거주할 주택 또는 다른 부동산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졌다'고 응답했다. 작년보다 5.1%포인트 늘어난 비율이다.

이렇다 보니 가계 부채의 위험성을 재는 잣대인 DSR(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 2011년 17.2%였지만, 작년에는 26.6%까지 상승했다. 정부는 "원금도 함께 갚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DSR이 늘어나는 측면도 있으니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DSR이 늘어나면 소비 여력이 감소해 경기 활력을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금융 부채를 가진 가구의 70.1%는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럽다고 답했고, 74.5%는 원리금 부담 때문에 저축, 투자,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했다.

연령대로 보면 40대(가구주 기준)의 금융 부채가 작년 7160만원에서 올해 8017만원으로 12% 늘어 가장 빚이 많이 증가했다. 30대(5877만원)는 7.6% 늘어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는 집값이 비싼 서울의 평균 부채가 9671만원으로, 전국 평균(6655만원)의 1.45배였다.

◇고령층·자영업자 살림 붕괴 가능성 높아

가계 빚 증가로 한계 상황에 내몰릴 확률이 특히 높은 사람들은 자영업자들과 고령층이다. 566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 부채는 164.2%에 달한다. 월급 생활자는 이 비율이 101.1%다. 자영업자의 빚 부담이 월급쟁이의 1.6배에 달한다는 뜻이다. 작년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도 한 해 사이 25.5%에서 30.2%로 급증해 위험 수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입은 신통치 않다. 자영업자 중 12.9%인 73만명이 한 달 소득이 100만원에도 못 미친다.

창업 여건이 극도로 나쁘지만 일자리가 줄어드는 탓에 빚을 내서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고 있다. 고용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는 2013년 1분기 이후 계속 줄어들기만 하다가 올해 3분기에 408만8000명으로 처음으로 증가세(작년 동기 대비 1.3% 증가)로 돌아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0월 "금리 인상이나 부동산 가격의 하락에 따라 자영업자 부실 위험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은퇴한 고령층의 살림도 붕괴 직전이다. 작년 기준으로 전국 평균 빈곤율은 16%로 국민 6명 중 한 명꼴로 빈곤층이었는데, 66세 이상 고령층으로 좁혀보면 빈곤율이 절반 가까운 48.1%에 달했다. 빈곤율은 중위 소득(소득순으로 일렬로 세웠을 때 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의 절반(작년 기준 1188만원)에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리는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아직 직장을 갖고 있는 중장년들도 은퇴 이후를 두려워하고 있다. 가구주가 은퇴하지 않은 가구 중에서 노후 준비가 '잘 돼 있다'고 답한 비율은 8.8%에 그쳤다. '잘 돼 있지 않다'가 37.3%였고, '전혀 준비 안 됐다'는 응답도 19.3%에 달했다.

하지만 정부는 가계 부채가 아직은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고광희 기획재정부 자금시장과장은 "원금도 갚는 대출의 비중이 늘어나 대출 구조가 질적으로 향상됐고, 소득 상위 40%가 가계 부채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고소득층에 빚이 몰려 있기 때문에 국가 시스템상 위험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