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로봇 HAL
허리와 허벅지에 착용… 뇌파 읽어 작업보조
40㎏ 짐을 들 때 최대 16㎏ 분담해 부상도 방지

건설 현장에 로봇이 등장했다.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완전한 사이보그는 아니지만, 건설 노동자가 덜 힘들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웨어러블 로봇(신체 기능이 강해지도록 몸에 착용하는 로봇)'이다.
일본 대형 건설사 오바야시구미(大林組)는 건설 현장에 사이버다인사(社)의 로봇 슈트 'HAL'을 2017년 3월 말까지 총 10대 도입해 본점과 지점에 배치한다고 밝혔다. 이미 구입한 6대의 HAL 외에 4대를 추가 구입한다. 내년에도 몇 대를 더 도입할 계획이다.

하네다공항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HAL을 착용하고 승객 캐리어를 드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도쿄공항교통은 하네다 공항에서 캐ㅣ어를 운반하는 직원을 위해 HAL을 도입했다.

◆ 고령화로 일손 부족해 로봇 도입
이번 발표는 HAL이 비용 부담을 감안하더라도 건설 현장 노동자의 능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입증됐다는 뜻이다. 오바야시구미는 2014년 10월부터 현장 노동자 작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HAL을 배치해 작업량이 줄어드는지 확인해 왔다. 그 결과 HAL을 착용한 노동자가 무거운 자재를 옮길 때 허리에 가해지는 부담이 적어져 허리 통증이 줄었고, 피로도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HAL을 착용하고 일할 경우 하루에 할 수 있는 작업량도 1.5배 늘어났다. 오바야시구미는 사이버다인과 협력해 물건을 들 때 취하는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굽힌 자세를 지원하는 기능이나 방수·방진 기능을 HAL에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쓸 수 있는 작업지원용 HAL은 허리와 허벅지에 옷 위로 착용하는 형태다. 사람이 몸을 움직일 때 뇌에서 근육으로 보내는 신호를 허리에 붙인 센서로 읽어 뇌가 생각한 대로 사람의 움직임을 도와주고 힘을 더한다. 40㎏의 짐을 든다면 최대 16㎏만큼을 이 로봇이 분담한다. 작업지원용 HAL의 무게는 3㎏이고, 한 번 배터리 충전으로 약 3시간 작업할 수 있다. 충전은 45분 걸린다. 2014년 제품을 공개할 당시 밝힌 1대당 임대료는 월 12만~14만엔(약 120만~140만원) 수준이다.

오바야시구미의 건설 현장에서 인부가 HAL을 허리에 착용하고 있는 모습

◆ 의료 목적 개발… 공항 등에서 수요 커
일본 건설사가 현장 노동자를 위해 비용을 감수하면서 웨어러블 로봇을 도입하는 것은 저출산·고령화로 숙련 노동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일손 확보가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일본 전문지는 "건설 현장엔 무거운 자재를 운반하는 것과 같이 단순하지만 몸에 부담이 가는 작업이 많아 젊은층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오바야시구미 외에 다른 대형 건설사도 웨어러블 로봇을 활용한 작업량 경감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항에서 여행객의 캐리어를 나르는 단순 작업에도 HAL이 도입됐다. 일본 도쿄공항교통은 지난 11월 하네다(羽田)공항 버스터미널의 수하물 작업 요원들을 위해 HAL 10대를 도입했다. 버스의 밑에 있는 짐칸에서 캐리어를 버스에 싣고 내리는 직원들은 허리에 많은 부담을 느낀다. 도쿄공항교통은 지난 9월 HAL을 시험적으로 도입해 사용해본 결과, 직원들의 허리 피로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어 본격 도입을 결정했다. 도쿄공항교통은 향후 나리타(成田)공항 등지에서의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하네다공항이 도입한 HAL의 임대료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우가 신지(宇賀伸二) 사이버다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HAL 임대료는) 계약 내용에 따라 다르지만, 3년 계약으로 월 10만엔 정도”라고 설명했다.

사이버다인이 개발한 HAL은 사용 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의료용으로 개발된 ‘HAL 의료용 하지 타입’은 척수 손상이나 뇌졸중 등으로 다리 기능이 저하된 사람이 착용하면 보행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치료기기다. 현재 독일에서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다리와 팔이 불편한 사람에게 관절에 힘을 더해줘 활동하기 편하게 해주는 ‘복지용 HAL’도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 4월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 플러스포인트
SF소설에 감명받았던 요시유키 교수
회사·로봇 이름도 SF 영화에서 따와

사이버다인(CYBERDYNE)은 일본 쓰쿠바(筑波)대학 산카이 요시유키(山海嘉之) 교수가 2004년 설립했다. 그는 현재도 교수와 사이버다인 최고경영자(CEO)를 겸직하고 있다.
'사이버다인'은 SF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기업 이름에서 따왔다. 영화 속에서 사이버다인은 인공지능 시스템 '스카이넷'을 개발한다. 스카이넷은 핵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멸망시키려 한다. 인류를 제거하는 목적의 로봇 터미네이터를 만든 것도 스카이넷이다.
사이버다인은 2014년 3월 26일 도쿄증권거래소 마더스시장(한국의 코스닥과 비슷한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상장 첫날 사이버다인 주가는 공모가(3700엔)를 훌쩍 뛰어넘은 9600엔으로 거래를 마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영화 속 불길한 이름을 가진 기업이 공개됐다"라며 "사악한 이름의 로봇회사가 투자자를 이겼다"라고 표현했다.

사이버다인이 만든 웨어러블 로봇 ‘할(HAL)’의 이름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따왔다. HAL은 인공지능 컴퓨터로, 사람과 대화할 수 있고 체스도 둘 줄 안다. 영화에서 HAL은 우주선에 탑재돼 연구 임무를 수행하다가 탑승원을 모두 죽여버리려고 시도하다가 제거당한다.

산카이 교수는 2009년 ‘터미네이터4’ 일본 개봉 당시 맥지 감독과 가진 대담에서 사명을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따온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제가 연구하는 학문 분야 명칭이 ‘사이버닉스(cybernics)’이고, ‘사이버닉스가 필요한 분야에 기술을 활용해 힘을 내자’라는 뜻에서 힘을 뜻하는 ‘다인’을 합쳐 ‘사이버다인’이라고 지었다”라면서 “그런데 (남들이 물을 경우에는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가 지나면 ‘터미네이터’를 정말 좋아한다고 답하고 있다”라고 했다. 즉답은 피했지만, 이름을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따왔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HAL’이라는 명칭에 대해선 “‘하이브리드 어시스트 드림’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면서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팬이라고 했다. HAL의 정식 명칭은 ‘Hybrid Assistive Limb(하이브리드 보조 수족)’이다.

산카이 교수는 자신의 기술이 영화처럼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경계했다. 그는 상장 당시 니혼게이자이신문에 HAL이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당 10표의 의결권이 있는 특별 주식을 갖고 기업 공개 후에도 의결권의 86%를 보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카이 교수는 '포브스'가 지난 3월 발표한 '2016년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 세계 1577위, 일본 19위에 이름을 올렸다. 주식 가치가 상승한 덕분에 재산은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다. '포브스'는 산카이 교수에 대해 "초등학교 3학년 때 읽은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소설 '아이 로봇(I, Robot)'을 읽고 감명받은 뒤 지금까지 쭉 사람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로봇 개발에 도전해 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