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25년(1592년) 음력 5월 7일,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경상도 거제현 옥포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를 무찌른다. 임진왜란 발발 후 조선군이 거둔 첫 번째 승리다.

옥포에서의 승리는 사천, 한산도, 부산, 명량, 노량으로 이어졌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고를 울린 옥포에선 ‘해양강군, 대한민국’의 꿈이 오롯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군사마니아들과 함께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찾았다. 대우조선해양의 특수선(방산부문) 작업 현장을 보기 위해서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전경.

◆ 수주가뭄 속 ‘단비’... 방산, 대우조선해양의 희망이 되다

대우조선해양 특수선 건조장은 옥포만에서 조선소를 바라봤을 때 오른편에 있다. 경영 지원부서 사무실이 있는 본관동에서 버스를 타고 10여분(관내 제한속도 20km/h)이 걸렸다.

뻥 뚫려있는 조선소에서 특수선 건조장만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출입 보안 관리도 철저했다. 특수선 건조장에 들어가려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업체 근로자 중에서도 출입 허가가 있는 인원만 들어갈 수 있다. 특수선 사업부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2500여명. 대우조선해양 및 협력업체 근로자 4만여명 중 6%에 불과하다.

이날 특수선 건조장에선 대한민국 해군과 외국군으로부터 수주한 군함과 잠수함의 건조가 한창이었다.

지난 11월 8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장보고-2’급 8번함 ‘이범석함’의 진수식이 거행됐다.

지난달 8일 진수식을 가진 국산 잠수함 ‘장보고-2’(1800t급) 8번함 ‘이범석함’과 작전 시운전 중인 장보고-2 6번함 ‘유관순함’이 눈길을 끌었다.

이범석함은 일제강점기 만주벌판을 누비며 항일 무장독립투쟁에 앞장섰던 철기 이범석 장군을 기려 명명한 것이다. 유관순함은 1919년 3·1운동 때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유관순 열사를 기려 이름을 새겼다.

대영제국의 자존심이었던 영국 해군이 사상 처음으로 외국에 함정을 발주한 군수지원함(마스프로젝트 시리즈) 4척 중 2척에 대한 마무리 작업도 진행되고 있었다. 군수지원함은 공군에 비유하면 공중급유기와 같은 첨단 선박으로 고속으로 기동하는 군함에 안정적으로 유류와 군수 물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방산 수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인도네시아 잠수함 1번함과 2번함을 비롯해 태국 해군이 발주한 프리깃함과 울산함급 배치-2 호위함인 대구함, 100% 자체 설계한 3000톤급 중형잠수함 ‘장보고-3’ 1번함도 건조 작업이 진행중이다.

‘수주절벽’ 조선산업에서 방산 부문은 ‘단비’가 되고 있다. 조선업계의 방산부문 매출은 2013년 3050억원에서 2014년 4110억원, 2015년 1조1300억원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총 매출에서 방산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3년 2.1%, 2014년 2.7%대에서 2015년 7.5%까지 늘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저유가로 조선 신규 발주가 정체된 상황에서 방산 부문은 안정적인 먹거리가 되고 있다”며 “정부가 지난 10월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11조원 규모로 250척 이상의 공공선박을 발주하기로 한만큼, 방산부문이 조선업계의 숨통을 틔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영국 해군으로부터 수주한 군수지원함.

◆ 한국 군함 발전 이끈 대우조선해양...‘독보적인 잠수함 기술력’

대우조선해양의 방산 역사는 1983년 12월에 인도된 초계함(PCC) ‘안양함’부터 시작된다. 당시 대함·대공∙대잠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군함을 원했던 대한민국 해군은 만재배수량 1000톤급(동해급)의 초계함을 발주한다.

동해급 초계함의 4번함인 안양함을 건조하면서 특수선 시장에 진입한 대우조선해양(당시 대우중공업 산하 대우조선소)은 이후 1500톤급 프리깃함(FF), 해양경비정, 초계정(Patrol Boat) 등을 만들며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후 한국 해군의 잠수함 건조사업(KSS-1)을 통해 처음으로 ‘209급’ 1번함인 ‘장보고함’ 건조에도 나서게 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잠수함의 원조 격인 독일로부터 잠수함 건조 기술을 이전받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209급 1번함 ‘장보고함’은 2004년 ‘림팩’(환태평양 합동 연습, Rim of the Pacific Exercise) 훈련에서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존 스테니스함을 포함해 상대편 수상함 15척을 향해 40회 이상 가상어뢰공격을 성공시켰다. 이 과정에서 장보고함은 단 한번도 탐지되지 않아 외국군을 놀라게 했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209급 잠수함.

이후 대우조선해양의 잠수함 건조 능력과 수주 성적은 날로 발전했다. 대우조선해양은 1987년 대한민국 해군으로부터 ‘장보고함’을 최초로 수주한 이래 ‘209급’ 9척과 209급을 업그레이드한 ‘214급’ 3척, ‘3000톤급’ 신형잠수함 2척을 수주했다.

디젤-전지로 추진되는 재래식 잠수함은 충전을 위해 하루에 한번 정도는 수면 가까이 부상해야 한다. 하지만 214급 잠수함은 ‘AIP(공기불요) 시스템’을 장착해 최대 2주가량 물 위로 떠오르지 않고도 수중 작전을 벌일 수 있다.

최근엔 장보고-1급 잠수함 3척의 통합전투체계 성능개량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기도 했다. 통합전투체계는 잠수함의 두뇌역할을 수행한다. 잠수함에 탑재된 소나(음파탐지기)를 이용해 표적을 탐지, 추적·식별하고, 전술상황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교전 수행 기능도 효율적으로 통합됐다. 대우조선해양은 개발시험평가 및 운용시험평가를 마친 후 통합전투체계 성능을 개선한 장보고-1급 잠수함 3척을 2017년말부터 2018년까지 순차적으로 인도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동남아와 중남미 등에서 신규 방산 부문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1년 인도네시아로부터 잠수함 3척을 11억달러에 수주한 경험이 있다. 인도네시아가 발주한 1400톤급 잠수함은 대우조선해양이 1988년부터 건조한 장보고-1급 잠수함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를 발전시켜 독자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출형 모델이다.

길이는 61m이며 40명의 승조원을 태우고 중간기항 없이 1만해리(1만8520km)를 운항할 수 있다. 이는 부산에서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까지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해양주권을 지키기 위한 군함 건조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최초로 잠수함을 수출하는 등 조선업계 최다 방산 수출 위업을 이뤄낸 경험을 바탕으로 방산 사업을 회사 성장 동력의 중요한 축으로 적극적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해군 수상구조함 ‘통영함’.

◆ 대우조선해양에 상처 남긴 통영함… 방산비리인가, 납품비리인가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해군에선 수상구조함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수상구조함은 침몰한 선박을 건져 올리거나 수중 탐색을 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대우조선해양은 1600억원에 3500t급 수상구조함 ‘통영함’을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2년 건조를 마무리했고, 해군은 2012년 9월 진수식을 가졌다. 당시 해군본부는 ‘수중 3000m 탐색 무인탐사기를 탑재했고 대형 항공모함까지 예인할 수 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이 배는 진수식이 끝난 이후에도 옥포조선소를 떠나지 못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참모총장의 출동 명령에도 진도 앞바다로 가지 못했다.

통영함은 왜 진도로 가지 못했을까? 이 논란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에 대해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통영함의 출동을) 누가 가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면서 모르쇠로 일관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통영함의 ‘수중무인탐사기’(ROV)와 음파탐지기(소나) 납품 비리가 불거졌다. 2010년 3월 방사청과 ROV 제작사인 GMB사는 127억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2013년 12월 방사청은 자신들이 주관한 해상수락시험(SAT)에서 ‘만족’ 평가를 했다.

그러나 통영함을 실제 운용하는 해군의 평가는 달랐다. 해군은 2014년 2월 시행한 작전운용시험에서 초음파 탐지카메라 성능 미달을 발견하고 초음파 탐지카메라 교체를 요구했다. 초음파 탐지 카메라 성능 미달은 작전운용시험 15개월 전인 2012년 11월에 이미 지적받았던 내용이다. 방사청은 ‘업무 부주의에 의한 서류 누락’으로 GMB사에 이 내용을 전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소나 역시 해군이 요구한 성능에 미치지 못했다. 해군은 정확도가 높고 수중물체를 탐지하면서 ROV를 유인할 수 있는 ‘멀티빔 형태 음파탐지기’를 요구했으나 방사청은 ‘단일빔 모델’의 구매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예비역 대령 브로커와 방사청 담당자 간의 비위 행위가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통영함 비리를 ‘방산비리’로 부르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표한다. 납품과정에서 불거진 비리이므로 ‘납품비리’로 불러야 정확하다는 것이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군과 관련한 모든 비리를 싸잡아 ‘방산비리’라고 부르면 적용 범위와 비리 판정 기준이 혼란스러워진다”고 했다. 김 의원은 “방산비리는 정부가 지정한 방위사업체가 무기를 생산하고 납품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리를 의미한다”면서 “감사원이나 검찰이 적발한 비리는 상용 물자를 납품하는 업체나 해외에서 무기를 구매하는 업무를 대행하는 무기 중개상의 납품 비리가 대다수로 ‘방산비리’라는 용어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이 통영함 때문에 입은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방사청은 지난 6월 통영함 건조가 지연된 것과 관련, 대우조선해양에 900억원대의 지체보상금을 청구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방사청의 납품 비리로 인도가 늦춰졌는데 왜 우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냐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서울중앙지법에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냈다. 법원에서 지체보상금 청구가 적합한지 따지겠다는 취지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은 ROV나 소나와는 관계가 없다. 방사청이 갖다 준 제품을 그대로 실었을 뿐”이라며 “납품비리로 인도가 지연됐는데 체계종합업체에만 책임을 무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체보상금 규모의 적절성도 따져봐야 한다. 수주액이 1600억원인 사업의 절반이 넘는 900억원을 지체보상금으로 내라는 것은 과한 처사”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통영함 인도 지연 원인은 관급장비인 HMS와 ROV의 기준 미달과 계약업체의 책임인 종합군수지원요소(ILS) 기준 미달로 운용시험평가 결과, ‘전투용 부적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ILS 기준 미달, 상세 설계 품목 계약 납기 미준수 등 업체에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 지체보상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은 12월 19일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