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스스로 목적지까지 운전하는 기술, 생체 특징을 모방한 로봇, 인간처럼 판단하는 컴퓨터…

국내외 전문가들은 2017년 과학기술 분야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기술로 어떤 것들을 꼽았을까. 조선비즈는 가트너·IDC 등 시장조사기관과 포브스·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주요 외신, 기업전략 컨설팅 회사 프로그 디자인, KT경제경영연구소 등이 소개한 2017년 유망기술 가운데 중복되거나 큰 의미를 지닌 기술 5가지를 정리해봤다.

한 남성 운전자가 자율주행차량 안에서 책을 읽고 있다.

◆ 자율주행

자율주행은 운전자가 가속페달, 브레이크, 운전대 등을 조작하지 않아도 차량이 스스로 목적지까지 주행하는 기술이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은 10건 중 9건이 인간의 실수 때문에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과학기술로 방지해보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매년 120만명에 이른다.

전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와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자율주행 분야에 거액을 투자해왔다. 아직 자율주행차가 시판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기술적으로는 상용화에 거의 근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 우버는 이달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개시했다.

주요 외신과 시장조사기관은 2017년에 자율주행 기술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당장은 운전자를 보조하는 수준의 제한적인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간이 전혀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은 2020년 이후 상용화 단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트너는 “2020년이면 자율주행 기능이 적용된 차량이 2억5000만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교통부는 “오는 2030년 전체 자동차의 26%가 완전 자율주행차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세돌 9단이 지난 3월 구글 알파고와 대국을 펼치고 있다.

◆ 인공지능(AI)

AI는 인간처럼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한국에서는 지난 3월 이세돌 9단을 압도하는 바둑 실력을 선보인 구글의 바둑 AI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AI 기술의 존재가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현재 구글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IBM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AI 시장 선점을 위해 앞다퉈 관련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 네이버 등 국내 대기업들도 AI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가트너는 “AI는 규칙 기반의 전통 알고리즘 방식을 뛰어넘어 자율적으로 이해하고 학습·예측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AI는 예술 영역으로 적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 9월 소니 컴퓨터과학연구소(CSL)가 개발한 AI는 기존 곡 수천 개를 학습한 뒤 ‘아빠차’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었다. 올해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공상과학(SF) 영화제 ‘SF 런던’에는 1980~1990년대 나온 SF 영화의 대본 수십개를 학습한 AI가 직접 쓴 영화 대본이 공개되기도 했다.

물론 소니 AI가 만든 노래는 기존 히트곡들을 모방한 수준에 불과했고, 영화 대본은 이야기 전개가 엉성했다. 그러나 프로그 디자인은 “AI가 대본을 집필한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갈 날이 올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오큘러스 가상현실 헤드셋(왼쪽)과 구글의 증강현실 안경인 구글 글래스

◆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2016년에도 많은 기업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VR·AR 기술은 2017년에도 가장 주목받는 기술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전망이다. MS와 페이스북, 오큘러스 등은 내년에 VR·AR 관련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VR과 AR 기술이 인간과 인간, 사람과 소프트웨어 시스템간 소통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분석한다. 데이비드 설리 가트너 부사장은 “VR과 AR은 모바일과 웨어러블, 사물인터넷(IoT) 환경을 통합해 개인의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가상 세계에서 다양한 기기들이 상호 연결돼 공간의 개념을 재정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VR과 AR 시장의 규모가 2016년 52억달러(약 6조2000억원)에서 2020년 1620억달러(약192조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두 시장이 2025년 800억달러(약 9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위스 로잔공대가 개발한 소프트 로봇

◆ 소프트 로봇

기존 로봇은 단단한 소재로 만들어졌고,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소프트 로봇은 생체를 모방한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부드러운 소재가 특징이다. 생체모방 로봇으로도 불린다.

지난 10월 스위스 로잔공대 연구팀은 사람의 근육조직과 비슷한 소프트 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실리콘과 고무로 만든 작은 관 속에 공기를 불어넣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구부러지며 이동하는 모습은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것과 유사하다. 연구팀은 이 로봇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구부러지는 생체의학장치에 적용돼 재활훈련이 필요한 환자의 보조 기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프트 로봇은 환자 재활 뿐 아니라 인공장기, 깨지기 쉬운 물건 운반 등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차량 소재로 쓰여 사고 충격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디자인 프로그는 “소프트 로봇 발전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로봇이 유연해지면 용도가 더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우리 생활에 더 깊숙이 침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룸버그 제공

◆ 디지털 기술 플랫폼

디지털 기술 플랫폼은 디지털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기업에 기본적인 구성 요소를 제공한다. 가트너는 디지털 비즈니스 구현의 필수요소 5가지로 정보 시스템, 고객 경험, 분석 및 인텔리전스, IoT, 비즈니스 생태계를 꼽았다.

이를 바탕으로 공급자와 수요자가 상품·서비스를 거래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모든 비즈니스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GE, 보쉬 등의 기업이 디지털 기술 플랫폼을 활용해 기존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전통적인 형태의 비즈니스가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IDC는 “기업이 속한 플랫폼 내에서의 경쟁력 확보는 곧 해당 시장의 독식을 의미한다”며 “지금까지의 시장 접근 방식, 가치 창출 방식과는 전혀 다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보다 민첩하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기업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