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음성인식 인공지능(AI) 스피커 시장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음성인식 AI 스피커는 사용자의 목소리를 인식해 날씨와 뉴스, 음악 등을 들려주는 기기로 일종의 ‘가정용 비서(홈 비서)’로 급 부상 중이다.

16일 통신 및 전자·인터넷 업계에 따르면, 내년엔 6~7개 AI 스피커가 추가로 출시돼 국내에서 각축전을 벌일 전망이다. SK텔레콤(017670)이 홈비서 ‘누구’를 출시하며 시장 선점에 나선 가운데, 경쟁 이동통신사인 KT(030200)·LG유플러스(032640)와 국내 최대 IT 기업 삼성전자(005930), 포털 업체 네이버(NAVER(035420))까지 AI 스피커를 준비 중이다.

이들 업체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IT 공룡과의 경쟁이다. 현재 전세계 AI 홈비서 시장은 아마존이 선점하고 구글·MS가 그 뒤를 쫓고 있는 상황이다.

◆ 이통 3사, 음성인식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 눈독

SK텔레콤의 AI 음성인식 스피커 ‘누구(NUGU)’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에 이어 KT와 LG유플러스도 음성인식 AI 스피커 시장에 본격 뛰어든다. KT는 내년 초 음성인식 AI 홈비서 서비스 ‘기가 지니’(가칭)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 서비스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TV(IPTV)와 연동한 점이 특징이다. 기가 지니는 KT의 IPTV 서비스 ‘올레tv’와 연결돼 음성만으로도 TV 조작을 가능하게 해준다. 각종 생활정보와 음악 재생 기능도 제공할 계획이다.

LG유플러스도 내년 상반기에 사물인터넷(IoT)이 연계된 음성인식 AI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LG전자(066570)뿐만 아니라 여러 벤처 기업들과 사업 협력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LG유플러스가 LG전자와 협업해 AI 스피커형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스마트홈 허브 역할을 할 AI 홈비서 서비스를 내년 안에 출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9월 SK텔레콤은 이통 3사 중 가장 먼저 음성인식 AI 스피커 누구를 출시했다. 누구는 지금까지 2만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누구의 진화 속도도 빨라졌다. 출시 초기 음악 재생에 집중했던 데서 벗어나 뉴스 들려주기, 위키피디어를 활용한 질의 응답하기, 치킨과 피자 등 배달음식 주문 등으로 기능이 확대됐다.

SK텔레콤 디바이스지원단 관계자는 “누구는 T맵, b tv, 위키 등 다양한 플랫폼과 연결되고 있고 향후 다양한 플랫폼을 묶는 허브(HUB)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조만간 IPTV제어, 대중교통 정보 제공, 음성 커머스 등 다양한 기능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올해 국내시장 진출을 시작으로 향후 글로벌 시장으로 서비스 확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현재는 한국어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으며, 글로벌 음성인식 솔루션 기업과 협력을 통해 글로벌화 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 AI 플랫폼 선점에 나선 삼성전자와 네이버 “ 생태계 만들겠다” 야심

갤럭시S8 콘셉트 이미지

삼성전자(005930)는 3가지 각도에서 AI 스피커와 AI 비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우선 삼성전자가 인수한 세계적 스피커 업체 하만카돈이 내년에 AI 스피커를 내놓는다. 여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음성비서 코타나가 사용된다. 또 윤부근 사장이 이끄는 삼성전자 가전사업부에서도 가정용 AI 스피커를 출시를 오랫동안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동진 사장이 이끄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음성인식 AI 기능을 탑재한 신제품 스마트폰 ‘갤럭시S8’을 내년 상반기에 출시할 예정이다. 갤럭시S8의 음성인식 AI는 사용자의 일상 언어를 95% 이상 캐치하는 개방형 AI 플랫폼이다. 사용자의 음성 명령을 통한 모바일 결제 등도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AI 플랫폼 개발업체 비브 랩스를 인수했다.

국내 1위 포털 업체인 네이버 역시 홈비서 시장 진출에 시동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지난달 29일 프랑스 스피커 스타트업 드비알레(Devialet)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송창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다가오는 AI 시대에서 스피커는 단순한 음향기기가 아닌 AI와 사람을 연결하는 중심 도구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향후 AI 스피커에 드비알레의 기술을 접목할 것을 시사했다.

네이버는 지난 9일 음성 관련 원천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오디오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들에게 매년 100억원씩 3년간 총 3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지난 10월 연례 개발자 회의 ‘데뷰(DEVIEW)2016’에서 AI 음성인식 비서 ‘아미카(AMICA)’를 공개하고 파트너사를 모집하고 있다. 일부 업체를 대상으로 아미카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 개발 플랫폼 ‘아틱(ARTIK)’과 제휴를 맺었으며 SPC그룹과 GS샵·배달음식 주문 서비스 ‘배달의 민족’과도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네이버가 지난 10월 연례 개발자 회의 ‘데뷰2016’에서 공개한

AI

음성인식 비서 ‘아미카(AMICA)’를 공개하고 시연했다. /노자운 기자

삼성전자와 네이버의 AI 홈비서 개발 방향은 디바이스보다 콘텐츠, 소프트웨어를 먼저 만들어 생태계를 선점하는 것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애플이 기술을 되도록 공개하지 않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독자적으로 형성해왔다면, 구글은 API를 개방해 영토를 확장해왔다”며 “우리도 애플보다는 구글처럼 개방형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다양한 소프트웨어 업체들과 협력해 AI 서비스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AI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규모가 작다”며 “이런 상황에서 시장을 선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영향력 있는 서비스를 내놓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에 인수된 AI 기술 업체 비브랩스의 다그 키틀로스(Dag Kittlaus)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전자와 비브랩스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개념의 AI 플랫폼을 선보일 것”이라면서 “전세계 어디서든지 사용 가능한 AI 플랫폼이 스마트폰과 세탁기, 냉장고, TV 등 다양한 전자기기를 연결하면서 사용자의 개인 비서 역할을 하는 미래를 꿈꾼다”고 전했다.

◆ 아마존 등 AI 홈비서 글로벌 강자의 움직임 더 빨라져

해외에서는 AI 홈비서 시장의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 2년 전 스마트 홈스피커 ‘에코’를 출시한 아마존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구글과 MS가 열심히 뒤를 쫓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달 30일 ‘아마존 웹 서비스 컨퍼런스(AWS)’를 개최하고 음성인식 AI 비서 ‘알렉사(Alexa)’를 기반으로 제품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인텔과 제휴를 맺었다고 밝혔다.

아마존과 인텔은 내년 1분기 중 알렉사를 탑재한 스마트 홈스피커의 레퍼런스 디자인(다른 제조사가 모방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기술 청사진)을 내놓고, 이를 통해 홈비서 생태계의 ‘왕좌’를 지키겠다는 계획이다. 아마존은 지난해에도 알렉사용 API와 소프트웨어개발자키트(SDK)를 타사 개발자들에게 공개한 바 있다.

아마존의 알렉사와 연동한 LG전자의 스마트씽큐 허브.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스마트씽큐 센서를 부착해 기기들을 손쉽게 관리, 제어할 수 있다.

구글은 아마존을 바짝 추격 중이다. 지난 10월 에코보다 50달러 저렴한 129달러짜리(15만원) ‘구글홈’을 출시하며 아마존 견제에 나선 상황이다. 구글홈은 사용자의 목소리를 인식해 질문에 대답하고 집안의 각종 기기를 원격 제어할 수 있는 AI 디바이스다.

MS 역시 AI 비서 ‘코타나(Cortana)’의 개발자 툴을 공개했다. MS는 세계적인 음향 기기 제조사인 하만카돈과 함께 내년 중 홈 스피커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하만카돈은 얼마 전 삼성전자가 인수한 하만이 보유한 오디오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