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및 인도 시장에 진출한 스타트업이 잇달아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있다. 올해 들어 모바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크게 악화됐지만 신흥 시장에 도전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벤처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동남아와 인도를 한국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시장으로 보고 있다. 최근 1~2년 새 ‘레드오션’이 된 중국 대신 동남아·인도가 한국 스타트업의 새로운 활로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해당 시장을 선점하는 업체를 새 유니콘(기업 가치가 1조원이 넘는 스타트업) 후보로 점치고 있는 것이다.

◆ 밸런스히어로·42컴퍼니, 동남아·인도 시장 업고 ‘훨훨’

인도 선불 스마트폰용 유심(USIM) 잔액 확인 애플리케이션 ‘트루밸런스’를 개발한 밸런스히어로는 지난 12일 1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3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은 데 이어 9개월만에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이철원(앞줄 가운데) 밸런스히어로 대표이사와 직원들

밸런스히어로는 설립 초기부터 인도 시장 공략에 ‘올인’하는 전략을 취했다. 인도가 네트워크 환경이 열악하며 스마트폰의 사양이 대체로 낮다는 점에서 착안, 휴대폰이 인터넷에 연결돼있지 않을 때도 선불 스마트폰의 잔액 정보와 데이터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지난 달 42억원의 투자 유치 소식을 알린 42컴퍼니 역시 인도와 파키스탄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42컴퍼니가 운영 중인 잠금화면 앱 ‘슬라이드(Slide)’는 현재까지 총 400만회 이상 다운로드되며 현지 잠금화면 앱 가운데 1위에 올랐다. 한 달 간 슬라이드 앱 사용자의 잠금화면을 통해 노출되는 광고·콘텐츠는 20억개에 달한다.

42컴퍼니는 이용자 1억명 확보를 장기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공동 창업자인 이성원씨는 “인도 인구와 파키스탄 인구를 합치면 15억명으로, 중국 인구보다 많다”며 “사용자 1억명 확보가 결코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희승·윤신근 잡플래닛 공동대표(왼쪽에서 첫번째, 세번째)와 잡플래닛 투자사인 퀄컴벤처스코리아의 권일환 총괄(가운데)

지난 10월 벤처캐피털 4개사로부터 80억원을 투자 받은 기업 정보 업체 잡플래닛도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이번 투자액 80억원 가운데 40억원을 한화인베스트먼트가 투자했다.

잡플래닛의 해외 타깃 사장은 인도네시아 시장이다. 지난해 5월 인도네시아에 진출했으며, 현재 기업 정보 포털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월간 순 방문자 수(UV)가 약 100만명으로, 2위 업체인 쿼자(Qerja)보다 30% 가량 많은 수준이라고 회사측은 추산한다. 누적 데이터베이스(사용자가 기업 리뷰 및 연봉 정보 등)는 약 15만개로, 쿼자의 데이터베이스(8만개)보다 2배 많은 수준이다.

지난 5월에는 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산 화장품을 판매하는 역직구 업체 알테아가 40억원을 투자 받았다. 미래에셋벤처투자와 포스코기술투자 등 국내 벤처캐피털은 물론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인 500스타트업, 중국 체루빅벤처스 등 해외 투자 회사들도 참여했다.

◆ “인도 스마트폰 인구, 2019년엔 3억명 넘어”

동남아 및 인도 시장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성장 가능성이 큰 데 비해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한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인도의 스마트폰 가입자 수는 2억25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체 인구의 18%에 불과하다.

모건스탠리는 인도의 스마트폰 시장이 오는 2018년까지 매년 23%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연간 성장률을 5%로 예측한 것과 비교하면, 인도 시장의 잠재성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내년에는 인도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2위(1위는 중국)의 스마트폰 시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시아 주요 국가의 스마트폰 사용 인구 전망치(2015년은 실제 수치)와 성장률 전망치

미국의 시장 조사 업체 이마케터(eMarketer) 역시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마케터는 오는 2019년 인도의 스마트폰 사용자 수가 3억1710만명을 돌파, 지난해(1억6790만명)보다 90%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마케터는 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의 성장성도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의 스마트폰 인구는 66%, 필리핀 스마트폰 사용자 수는 50%, 베트남 스마트폰 인구는 7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중국의 스마트폰 인구는 이 기간 30%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이마케터는 예측했다.

◆ 투자 전문가 “동남아·인도 아직 블루오션...먼저 진출하라”

벤처 투자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남아·인도 시장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VC부문 대표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지대가 해수면보다 낮아 지하철이 없어, 젊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이 일상”이라며 “이처럼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큰 반면 현지 서비스의 품질은 그리 높지 않아, 한국 스타트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인도 뭄바이의 한 여성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게임 개발사 네오위즈와 검색엔진 첫눈 등을 설립한 장병규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파트너 역시 동남아와 인도 시장 진출이 국내 스타트업의 유일한 돌파구라고 말한다.

장 파트너는 지난 8월 부산에서 열린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 참석해 “한국 스타트업은 미국이나 중국 업체와 경쟁해 이길 수 없으므로, 그 대신 한창 크고 있는 인도·동남아 시장에 진출해 10년 후를 바라보고 중장기적으로 성장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개발도상국의 경제에는 정치적 변수가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향후 5~10년 뒤 어느 나라의 시장 규모가 커질 수 있을지 면밀히 살펴보고 잘 판단해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동남아·인도 시장 역시 이미 레드오션이 돼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는 최근 ‘스타트업X인터넷 기업인의 밤’ 행사에 참석해 “요즘은 동남아 현지 스타트업들이 한국 스타트업보다 훨씬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며 “앞으로 5년 뒤엔 어떻게 될 지 두렵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