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NXC(넥슨의 지주회사) 대표이사가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 비상장주식을 건넨 것과 관련,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진경준 전 검사장도 비상장 주식을 공짜로 받은 것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아 100억원대 시세 차익에 대한 추징을 면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는 13일 김 대표의 주식 증여가 뇌물 공여 대가성이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판결이 나오자 벤처 업계에서는 예상 밖의 결과라며 어리둥절해하는 분위기다. 친구 사이에 비상장 회사의 주식을 공짜로 주고받는 것이 합법화되는 것이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김정주 NXC 대표이사(왼쪽), 진경준 전 검사장(오른쪽)

◆ 벤처 업계 “나도 친구 잘 둬 주식 대박 났으면”

벤처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어리둥절해하며 친구 간 비상장 주식의 공짜 거래가 합법적인 것인지 되물었다. 비상장 주식의 대량 무상 증여는 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일인데, 무죄 판결이 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벤처캐피털리스트 A씨는 “스타트업·벤처 기업이 대체로 현금이 부족하므로 법률이나 회계 자문의 대가로 돈 대신 지분 일부를 주는 경우는 있으나, ‘나중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수억원어치 주식을 공짜로 검사에게 주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털리스트 B씨는 “업계에서 20년 넘게 일했지만, 대가 없이 우정으로 비상장 주식을 무상 증여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일이 없다”면서 “나도 능력있는 친구를 둬서 주식을 공짜로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분 관리에 철저한 김 대표가 대가 없이 1만주나 넘겼을 리는 없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벤처 업계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는 창업 초기 멤버에게도 주식을 잘 안 주고 독점하다시피 할 정도로 지분을 피 같이 관리하는 사람인데, 학교 동창이라는 이유로 주식을 무상증여했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믿기 어렵다”며 “김 대표가 굉장히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한 듯하다”고 말했다.

넥슨의 지배 구조는 넥슨코리아가 넥슨재팬이 지배하고 넥슨재팬은 NXC가 지배하는 형태다. NXC는 넥슨재팬 지분 57.87%를 보유하고 이는데, 김정주 대표와 부인인 유정현 감사의 NXC 지분율은 96.6%에 달한다.

◆ “대박 예고된 품귀 주식을 공짜로 받았는 데 무죄? 들끓는 여론”

2005년 넥슨에서 4억여원을 빌려 비상장주식 1만주를 산 진 검사장은 2006년 보유 주식을 10억원이 넘는 가격에 넥슨측에 되판 뒤, 8억5000만원으로 넥슨재팬 주식 80만주를 샀다. 상장 당시 넥슨재팬의 전체 주식(4억2000만주) 가운데 약 0.2%에 해당하는 규모다.

넥슨재팬은 2011년 일본 증시에 상장한 뒤 주가가 크게 올랐으며, 진 전 검사장은 지난해 보유 주식을 매각해 12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냈다.

이번 판결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한 네티즌은 “돈을 준 사람(김정주 대표)이 뇌물이라고 인정했는데 무죄를 선고하다니 납득이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앞서 지난 9월 김 대표의 변호인은 “공소 사실 관계를 인정한다”며 주식 매매 자금이 뇌물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교사나 하급 공무원들은 선물이나 식사 대접 한 번 잘못 받아도 김영란법에 의해 처벌받는데, 친구 사이니 120억원어치 주식은 공짜로 줘도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문했다.

직장인 정모(30)씨는 “앞으로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김 대표와 진 전 검사장이 남긴 선례를 보며 ‘수십억 대박’의 꿈을 꿀 수 있게 됐다”며 비꼬기도 했다.

◆ 전문가들도 “판례와 어긋나” “정황 증거 고려 전혀 안한 듯”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도 판결 내용을 평가하는데 있어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정황’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에 의문을 나타냈다.

김 소장은 “넥슨의 비상장주식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을 정도로 희소성이 컸다”며 “1만주를 사실상 공짜로 증여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임에 틀림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아무리 객관적 증거가 부족했다 해도, 정황상 증거를 너무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모 변호사는 “뇌물죄에서 말하는 ‘직무’는 지금 당장 담당하지 않는 업무라도 법령에 따른 일반적인 직무 권한에 속하는 직무를 뜻하며, 공무원이 직위에 따라 담당할 수 있는 모든 직무를 포함한다”는 내용의 대법원 판례(2013도9003)를 근거로 들어 이번 판결에 반박했다.

그는 “진 전 검사장이 넥슨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지금까지의 이력이나 검찰 조직 내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장래에 넥슨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거나 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진 전 검사장은 지난 2010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를 맡은 적이 있다. 금융조세조사부는 기업 비리를 내사하거나 수사하는 등 사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부서다. 진 전 검사장은 이후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과 인천지방검찰청 차장검사·부천지청장,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올해 8월까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지냈다.

소수 의견이기는 하지만, 검찰의 기소 방향이 잘못돼 무죄 판결이 나왔다는 시각도 있었다.

벤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촛불 정국으로 대통령 탄핵안까지 국회를 통과하는 상황에서 ‘검사 주식 대박 사건’으로 논란이 컸던 사안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은, 실제 검찰이 기소한 내용(뇌물 공여 혐의)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찾지 못했거나 기소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 아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