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소비가 얼어붙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조사하는 1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5.8. 100을 넘으면 소비자들이 앞으로 형편이나 수입 등이 좋아진다고 보는 것이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인데 10월엔 101.9였던 지수가 지난달에는 6.1포인트 급락했습니다. 2009년 4월 94.2 이후 최악입니다. 그만큼 국민들이 경기가 좋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어수선한 정국에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겹쳐 내수 시장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습니다.

각 기관과 연구소가 예측하는 내년 경제성장률은 거의 1~2%대. 이대로 된다면 우리나라는 1960년대 본격 경제 개발 노선을 걸은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성장률 2%대'라는 정체의 늪에 빠져들게 됩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당시에도 1998년 -5.5%를 기록한 뒤 이듬해 11.3%로 반등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0.7%를 기록하긴 했으나 다음해 6.5%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런 회복 탄력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면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28일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을 3.0%에서 2.6%로 낮추면서 이런 장기 침체 우려는 점점 현실이 돼가고 있습니다.

고령화가 소비 절벽 근본 원인

주변만 봐도 불황의 징후는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대형 마트 신규 출점 점포수는 4년 연속 감소세이고, 주요 외식업체 매출이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소비 한파가 더욱 몰아닥치는 상황. 그런데 미래는 더 암울합니다. '고령화'라는 구조적인 '소비 절벽'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신생아 수는 줄고, 반면 기대수명이 늘어 한창 생산활동에 나서야 하는 장년층(23~39세)이 줄어드는 전환점에 놓여있습니다.

보통 30세부터 50대 중반까지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 등에 평생 써야 할 돈 절반 이상을 씁니다. 이 연령대를 '주력 소비층'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2012년 2072만명이었던 주력 소비층은 이때를 정점으로 내림세로 돌아섰습니다. 2030년이 되면 1850만명까지 감소할 것이란 추산이 나왔습니다.

1958년 한국에서 태어난 인구는 78만명이었습니다. 이른바 '58년 개띠'입니다. 이들 가운데 4명 중 1명꼴인 25%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이들이 25세가 됐을 때 한국은 해마다 10%씩 초고속 성장을 이어오던 개발도상국이었습니다. 대졸자 대부분이 취업했고 상당수가 공채 1기로 입사해 30년 동안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했으며, 입사 동기 100명 중 5명 이상은 임원이 됐습니다. 45세 이전에 내 집 마련 꿈을 이뤘고, 이후 부동산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대형 마트를 찾은 한 고객이 음료 판매대에서 상품을 고르고 있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가운데 국내 정치 상황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내수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반면 58년생 개띠 아들뻘인 '1994년생 개띠'를 예로 들어볼까요. 1994년 출생한 한국인은 71만명입니다. 36년 전 아버지 세대와 규모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률은 아버지 세대보다 3배가 넘는 80%에 달합니다. 1994년생이 취업할 나이가 되는 2018년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요. 이때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고령 사회(aged society)'로 진입할 가능성이 큽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이란 뜻입니다. 어렵게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100명 중 임원을 달 확률은 1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고,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지금 분위기가 더 심해질 겁니다. 2018년은 특히 한국 역사상 출생자 수가 둘째로 많은(93만명) 1968년생이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시기와도 맞물립니다.

노력이나 자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1994년생 개띠들은 인구학적으로 '인구 오너스(Onus·저주)' 시대를 견뎌야 합니다. 인구가 늘면서 노동력이 꾸준히 제공되고 소비가 왕성해지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시대가 아니라 그 반대 현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겁니다.

외국인 관광객 끌어들여 '외수(外需)'의 내수화

그렇다면 우리 경제가 앞으로 닥칠 소비 불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먼저 기업들은 포화 상태인 내수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품질과 기술, '한류' 등을 앞세워 '리마커블(remarkable·주목받는) 코리안 브랜드'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개성'입니다. 오스트리아 유전학자 마르쿠스 헹스트슐레거는 저서 '개성의 힘'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가능성은 개성"이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브라질 같은 거대 국가와 이란·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이 개척지가 되어야 할 겁니다.

둘째는 '외수(外需)'를 내수화하는 정부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외수는 외국인 관광객 지갑에서 나오는 소비를 말합니다. 관광 경제를 일으켜서 1년에 외국인 방문객을 2000만명만 유치한다고 가정해도 우리 GDP의 1% 정도는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관광 경쟁력 국가순위는 141개국 중 29위로 중하위권에 그쳤습니다. 한국이 IT(정보기술)와 의학기술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인정받고 있지만, 정부 입법의 투명성과 도시 내 이산화탄소 배출량, 무엇보다 외국인 관광객을 맞는 태도 등 지표에선 바닥권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호감을 가진 외국인들을 지속적으로 유입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정부 모두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다양화입니다. '100세 시대'에 따라 이제는 30세에 사회활동을 시작한다 가정해도 20년 정도의 주기로 인생을 세 번 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이를 전반전(30~50세), 후반전(51~70세), 연장전(71~80세)으로 3분할한 뒤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를 경험한 부모 세대는 한 도시, 한 국가에 정착하여 평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릅니다. 여러 나라, 최소 2~3개 도시에서 직장을 갖고 돌아다니며 지내는 '멀티 해비테이션(multi-habita tion·다지역 주거)' 시대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소비 절벽

경기 불황이 이어지며 소비자들 불안 심리가 커져 소비가 급속히 줄어드는 현상. 30~50대 주력 소비 계층이 향후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것으로 보고 소비를 줄이는 대신 저축 등을 통해 노후 대비에 나서면서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주력 소비 계층이 지갑을 닫으면서 전체 소비가 감소하고 그 결과 경제가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