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유일호 부총리 유임쪽으로 결론 낼 듯
-청와대 간섭 안받고 경제정책 전권행사할 수 있을 듯
-새로운 경제리더십 보여주는 것 필요
-경기 하방리스크 막기위한 적극적 재정정책 강조될 전망

국회가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면서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와 임종룡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도 철회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이들을 공직후보자로 지명한 사실이 무효화됐기 때문이다.

현직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행대행으로 국정을 이끌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지난달 2일 박근혜 대통령이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차기 경제부총리로 지명하면서 불거졌던 경제컨트롤 타워 논란이 유 부총리의 유임쪽으로 결론이 났다. 유일호 부총리가 헌법재판소의 심리와 인용여부에 따른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동안 정부 경제정책을 이끌게 될 전망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이라는 대외 불안과 탄핵으로 인한 정치불안 등을 극복해야 하는 책임을 유 부총리가 짊어지게 됐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 탄핵으로 유일호 경제부총리 유임 사실상 확정

국회가 가결시킨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청와대에 전달되면 박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고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된다. 지난 2일 김병준 국민대 교수와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지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도 그 효력이 소멸된다.

지난 9월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설명을 듣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지난달 초부터 불거졌던 경제부총리 동거(同居) 체제를 종료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 야권에서는 공안검사, 박근혜 정부 법무부 장관 출신 황 총리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추미애 대표가 탄핵 투표 이전부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부의 연장선상이기 때문에 정치협상을 통해 국민총리를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했다.

하지만, 유일호 부총리에 대해서는 유임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과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과정에 대한 중앙정부 예산 지원 등 야권의 요구를 수용한 것 등이 유 부총리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의 주요 배경이다. 관료 출신으로 깐깐한 임종룡 위원장보다는 정치인 출신으로 대화가 통하는 유 부총리가 여야정 협치가 필수적인 탄핵정국 경제수장에 더 어울린다는 판단이다. 국민의당도 유 부총리이든, 임 위원장이든 경제부총리 문제를 시급히 확정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이 한 달 가량 소요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경제적 불확실성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유 부총리의 유임이 불가피하다는 인식도 많다. 여권도 현실적으로 유 부총리가 대선까지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경제부총리 유임이 확정되면 유일호 부총리는 경제정책의 수립과 결정에 대한 전권(全權)을 쥐게 될 전망이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 비서실의 기능이 정지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총리가 국정 전반을 지휘하지만, 권한 대행 체제라는 한계 때문에 경제정책은 경제부총리에게 전적으로 맡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 당시에도 고건 전 총리는 경제정책을 전적으로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일임했다.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의 전권을 쥐게 된다는 것은 기획재정부가 경제정책의 수립과 결정을 모두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고위 관계자는 “탄핵 정국에서 경제정책을 관장한다는 것은 유일호 부총리가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 인한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을 벗어낸 유일호표 경제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 청와대 간섭받지 않는 경제정책 전권 갖게될 듯

국회와의 정책 협의 과정에서 청와대에 보고해서 허락을 구해야 할 의무가 탄핵정국에서는 사라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야 모두 기획재정부와의 정책협의 통로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새누리당은 대통령 업무는 정지되지만,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소속이라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당정협의 중심의 정책 결정이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야권에서도 여야 3당 정책위 의장과 경제부총리가 참여하는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를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정부와 경제정책에 대한 현안 협의를 요청해놓고 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청와대의 간섭이 불가능한 탄핵정국은 유 부총리에게는 자신의 정책 구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기재부와 국회과 공통분모를 형성할 수 있는 것 중심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유 부총리가 전권을 갖고있는 경제수장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최근 한 달 동안의 행보에 대한 적절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지난 2일 박근혜 대통령이 임 위원장을 차기 경제부총리로 인선한 이후 유 부총리는 사실상 2선으로 후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난달 28일 김현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과 김광림 새누리당,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 의장을 따로 만났을 때도 ‘물러나야하는데..,’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전직 경제부총리 등을 만난 자리에서도 비슷한 말을 해서 위기 상황과 맞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임종룡 위원장이 실제로 차기 부총리 후보자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유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것 같은 행동을 한 것은 엄중한 경제환경과는 맞지 않았다”면서 “탄핵정국을 이끌게 된 상황이라면 유 부총리가 이에 대한 적절한 유감 표명을 하는 것이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일호 부총리가 전권을 쥐고 그리는 경제정책의 색깔은 이달 중 발표될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당초 임 위원장의 경제부총리 취임을 염두에 두고 이달 중준쯤 발표할 구상이었지만, 탄핵 정국으로 인해 발표일을 오는 20일 이후로 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실무진에서 만들어놓은 초안에 유 부총리가 주문한 내용을 추가하기 위해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KDI(한국개발연구원)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로 하향 조정하는 등 경기하방리스크가 높아진 것을 보강하는 방안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유 부총리가 재정정책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경제정책방향도 이와 같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기위축을 막기 위한 연초 추가경정예산편성 등의 카드가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