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개봉한 영화 ‘판도라’의 초반 돌풍으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긴장하고 있다. 영화 판도라는 한반도에 유례없는 규모 6.1의 강진이 발생해 40년이 넘은 노후 원자력발전소(원전)가 폭발하고, 방사능이 유출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룬다. 상영 첫날 15만4654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1281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흥행작 ‘7번방의 선물’(15만2808명)의 첫날 성적을 뛰어넘었다.

원전을 운영하는 한수원은 영화 판도라의 흥행에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원전 안전 논란을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다. 가뜩이나 올해 9월 경북 경주 인근에서 국내 지진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해 원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터라 더욱 그렇다.

한수원은 규모 6.5~7.0 지진에 견딜 수 있는 내진 설계를 했을 뿐 아니라 비상상황 발생시 수동으로 가동을 정지하기 때문에 원전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신고리 5·6호기 신규 건설을 재검토하고 원전 운영 실태를 공개해 국민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운영이 마비된 상태에서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원전에 대한 국민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화 ‘판도라’는 원전 재난을 다룬 블록버스터다.

영화 판도라 도입부에서는 ‘해당 지명, 인물은 사실과 관련 없다’는 자막이 나오지만 내용의 상당 부분이 현실을 반영했다는 것이 관람객의 반응이다. 영화 판도라를 만든 박정우 감독은 “영화의 현실성이 90%에 달한다”고 했다. 영화 속 원전 운영사는 ‘대한수력원자력’이며, 노후 원전의 이름은 ‘한별 1호’다. 한국수력원자력이 1986년 상업 가동을 시작한 한빛 1호기를 연상하게 한다.

영화 마지막에는 ‘한국은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 1위 국가다. 2016년 현재 4개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총 24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며 전체 원전 단지 반경 30km 이내에 9개의 광역자치단체와 28개의 기초자치단체가 밀접해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많은 나라가 탈핵을 결정했지만, 한국은 현재 6기를 추가 건설 중이고 4기의 건설 계획을 진행 중이다’라는 메시지도 등장한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80일 동안 (월성 원전 1·2·3·4호기를) 점검했던 내용을 국민에게 알려줘야 한다. 원안위가 한번도 국민과 소통한 적이 없다”면서 “정부는 원전의 철저한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균렬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과)는 “경주 지진 발생 후 월성 원전의 안전 수준을 강화했다”면서 “영화 속 상황을 실제와 비교하는 것은 힘들다. 예전과 달리 위험에 대비하는 기술 수준도 좋아졌기 때문에 한수원을 신뢰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올해 9월 경주 지진 발생 직후 한수원이 운영하는 고리 원전을 점검하고 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한수원이 운영하는 일부 원전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올해 11월 기준 한국전력의 원전이용률이 50%대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분석했다. 한전의 자회사인 한수원은 원전을 돌려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팔아야 수익이 나는데, 예상치 못한 경주 지진 여파로 실적에 타격을 입었다. 한수원은 지난해 원전 가동률 85%를 돌파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매출 10조6000억원, 순이익 2조5000억원)을 거둔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