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스페인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스포르팅 히혼전에서 스폰서 기업 로고가 평소보다 희미하게 드러나는 흰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이 유니폼의 원료는 천이 아닌 플라스틱 쓰레기였다. 인도양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이용해 스포츠 업체 아디다스가 제작했다. 유니폼 셔츠 하나에 폐플라스틱병 28개가 사용됐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도 홈경기에서 플라스틱 유니폼을 입고 있다. 폐플라스틱이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축구 경기에 환경보호와 자원 재활용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 에마 왓슨도 지난 5월 디자이너 켈빈 클라인이 폐플라스틱으로 제작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섰다.

플라스틱 재활용 판도 바꾼 '업사이클'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이나 에마 왓슨의 드레스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폐플라스틱을 고가의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업사이클은 개선(Upgrade)과 재활용(recycle)의 합성어로 아디다스를 비롯해 나이키·뉴발란스 등 글로벌 업체들이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다. 폐플라스틱 업사이클 기술은 이렇다. 우선 폐플라스틱을 모아 유독하지 않은 종류만 골라낸다. 골라낸 플라스틱을 잘게 분쇄한 뒤 녹이면 아주 작은 분말을 만들 수 있다. 이 분말을 이용해 다시 원하는 모양의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어낸다. 폐플라스틱 업사이클 기술은 3차원(3D) 프린터 기술과 만나면서 활용도가 높아졌다. 폐플라스틱 분말을 3D 프린터로 뽑아내면 실과 같은 형태의 플라스틱 실을 얻을 수 있다. 용도에 따라 실의 색상이나 굵기·강도 등도 자유자재로 조절해 옷과 신발·가방 등을 만든다.

폐플라스틱 분말에 5% 정도의 폴리에스터를 섞으면 착용감도 기존 섬유 제품과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아직은 한정판이나 이벤트용으로만 생산되지만 대량생산 체제가 갖춰지면 가격 경쟁력도 충분할 전망이다. 아디다스는 내년에 폐플라스틱을 이용한 러닝화 100만 켤레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플라스틱은 아주 긴 사슬이 이어진 고분자 구조인데 분말을 만들거나 녹여도 이 고분자 사슬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재활용이 가능하다"면서 "재활용한 플라스틱은 내구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다양한 첨가제 등이 개발되면서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빈곤층 구호용 주택 자재로 활용

폐플라스틱을 빈곤층 구호에 사용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미국 하와이의 벤처 바이퓨전은 트럭에 싣고 다닐 수 있는 컨테이너형 폐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을 만들었다. 이 공장에서 바다나 땅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벽돌로 만들어 빈곤층용 집을 짓는 데 사용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기계에 투입하면 파쇄기가 플라스틱을 아주 작은 조각으로 쪼갠다. 이 플라스틱 조각을 보일러에서 데워진 뜨거운 물을 이용해 높은 압력으로 압축하면 '리플라스트'라는 이름의 벽돌이 만들어진다. 기존 플라스틱 공정과 달리 접착제나 첨가제가 필요 없다. 바이퓨전 측은 "콘크리트 벽돌을 제작할 때보다 95%가량 온실가스 발생이 줄어들고 단열·방음도 뛰어나다"면서 "쓰레기장으로 플라스틱을 옮기고 매립하는 비용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플라스틱으로 담을 쌓은 뒤 강철 봉으로 가운데를 뚫어 고정만 시키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고정용 시멘트도 필요 없다.

콜롬비아 보고타의 비영리 단체인 콘셉토스 플라스티코스도 버려진 플라스틱과 고무를 이용한 집 짓기 활동을 하고 있다. 콘셉토스 플라스티코스도 플라스틱과 고무를 분쇄해 건축용 자재를 만든다. 고무 성분 때문에 탄력이 있어 쉽게 건물을 짓고 뜯을 수 있다. 4명이 40㎡ 규모의 집을 짓는 데 5일이면 충분하고 비용도 5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콘셉토스 플라스티코스는 올해에만 콜롬비아와 브라질 등에 200채가 넘는 집을 지었고, 전 세계로 플라스틱 집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