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 투자 다원화 바람 솔솔
셀트리온·LG화학은 자체 개발에 올인

국내 제약사들의 미래 먹거리 발굴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유한양행·녹십자·부광약품 등을 중심으로 유망한 스타트업이나 벤처에 과감하게 투자하거나 펀드에 참여하는 등 외부 투자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내부 연구개발(R&D)을 ‘전가의 보도’처럼 여겼던 국내 제약사들의 투자 방식이 다양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5일 벤처캐피털 인터베스트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토대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유한양행(000100)대웅제약(069620), 한독(002390), 녹십자(006280), 부광약품(003000)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 투자를 늘리고 있다.

유한양행은 남수연 전 연구소장이 회사에 합류한 2010년 이후 공격적인 외부 투자를 단행해왔다. 특히 2012년에는 한올바이오파마와 테라젠이텍스에 각각 295억원, 200억원을 투자했으며 올해 들어서도 바이오 벤처 기업 파멥신, 미국 나스닥 상장사 소렌토 테라퓨틱스(Sorrento Therapeutics) 등에 350억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했다. 다만 지난해 매출액 대비 R&D 투자금 비중은 6.5%로 낮았다.

유한양행의 원료의약품 자회사인 유한화학 안산공장 전경

한미약품(128940)과 대웅제약은 외부 투자금도 많고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높은 업체로 꼽힌다. 두 제약사는 기업의 인수와 지분 투자에 많은 돈을 썼다. 한미약품은 지주사 한미사이언스를 통해 약 포장 업체 제이브이엠의 지분 30%를 1291억원에 인수했다. 대웅제약은 한올바이오파마를 1040억원에 인수했다. 한미약품과 대웅제약의 지난해 매출액 대비 R&D 투자금 비중은 각각 16.8%, 12.5%였다.

부광약품의 경우 직접 투자보다는 펀드를 통해 간접 투자하는 것을 선호한다. 2013년에는 캐나다 바이오 투자사 TVM캐피탈이 운용하는 펀드 ‘TVM Life Science Ventures VII’에 65억원을 출자했다. 2015년에는 ‘메디카제1호사모펀드-WCCT’에 30억원을, ‘쿼드 Definition 제7호 펀드’에 30억원을 출자했다.

임정희 인터베스트 전무는 “제약사가 지분에 직접 투자하는 대신 펀드에 출자자(LP)로 참여하면, 투자 대상 업체들에 대한 정보를 다양하게 얻을 수 있다”며 “부광약품은 글로벌 펀드에 LP로 참여하는 전략을 통해 실력 있는 해외 바이오 벤처·스타트업을 초기에 발굴해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 투자 실적이 좋은 제약사로는 녹십자가 꼽힌다. 투자한 업체 중 상당수가 코스닥시장에 입성해 상당한 투자 회수 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녹십자가 2011년 26억원을 투자한 바이오리더스는 지난 7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투자 수익률은 100%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광약품과 녹식자의 지난해 매출액 대비 R&D 투자금 비중은 각각 13.7%, 11.2%였다.

국내 주요 제약사들의 최근 10년 간 외부 투자금과 지난해 매출액 대비 R&D 투자금 비중. 외부 투자를 많이 하는 유한양행의 경우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낮으며, 셀트리온제약은 반대 성향을 나타낸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큰 기업들은 외부 투자에 인색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셀트리온제약이다. 셀트리온제약은 지난해 725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중 37.7%에 해당하는 273억원을 R&D에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셀트리온제약의 경우 최근 10년 간 바이오 스타트업·벤처 기업에 투자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LG생명과학도 R&D 비중이 높고 외부 투자금은 적은 회사로 꼽힌다. 지난해 LG생명과학의 매출액은 4354억원이었으며, R&D에 투입된 자금은 매출액의 17.9%인 779억원이었다. LG생명과학은 올해 7월 바이오솔루션에 14억원을 투자해 11위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바이오 투자 업계 전문가들은 제약사들이 장기적인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셀트리온제약·LG생명과학보다는 유한양행·녹십자·대웅제약 같은 투자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약사가 모든 분야에서 자체 R&D를 진행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우수한 바이오 스타트업·벤처 기업에 투자해 육성한 뒤 이들이 제대로 된 연구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공동 연구 등을 통해 협업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좋다는 것이다.

임 전무는 대형 제약사들의 외부 투자가 보다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이들의 투자금 회수가 원활해질 수 있도록 상장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성 평가에 의한 특례 상장 제도가 지난해는 12개 기업을, 올해는 6개 기업을 상장시켰다”며 “앞으로도 기술력 있는 업체들이 기술성 특례 상장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한국거래소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