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새벽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박근혜노믹스의 퇴장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연 소득 1억5000만원 이상 고소득자에게 적용됐던 소득세 최고세율 38%가 40%(연소득 5억원 이상에게 적용)로 2%포인트 올라갔기 때문이다. ‘세율을 올리거나 세목을 늘리는 증세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대원칙, ‘증세없는 복지'가 허물어졌다. 야권이 추진했던 법인세 인상이 불발됐지만, 소득세 인상을 여야가 합의했다는 것은 여권 또한 박근혜노믹스의 ‘질서있는 퇴장’에 동의했다는 의미다.

코시 마타이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국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한국 경제 리뷰’ 세미나에서 “한국이 내년에 3% 성장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을 시사했다. 그는 특히 한국 경제의 중장기 리스크로 ▲가계부채 급증 ▲고령화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 ▲여성·청년층의 저조한 노동시장 참여율 ▲노동생산성 하락 ▲내수와 서비스업 주도형으로의 경제구조 전환 지연 등을 지목했다.

이 다섯가지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4대 구조개혁의 핵심이었다. IMF의 진단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이 어떠한 구조개선도 이뤄내지 못했다는 평가로 들린다. 박근혜노믹스가 실패한 정책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성적표인 셈이다.

창조경제와 규제개혁, 노동시장 이중 구조화 극복, 서비스 산업 육성, 일과 가정 병행 등 박근혜노믹스의 주요 과제는 한국 경제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줄 수 있다.

문제는 이 정책을 추진한 태도에 있다. 원칙과 명분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이 화근이었다. 정부가 정한 방침을 100% 관철시켜야 한다는 자세는 될 수 있는 일도 안되게 만들었다. 국회에 제출된 지 4년이 지나도록 상임위 문턱도 넘지못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대표적이다.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재정적 지원을 위해 만든 이 법은 의료 부문을 적용 대상에 포함시킬 지를 둘러싸고 논의가 멈춰있다. 야당은 의료부문을 빼면 법안 처리에 협조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정부가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면서 버티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의료부문을 빼고 나머지 부분에서 법안 내용을 시행한 뒤 성과를 바탕으로 야당을 설득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청와대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경제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야권의 다툼은 조선시대의 ‘예송(禮訟)논쟁’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경기조절 수단 중 하나인 세율(稅率)을 올리면 진보, 유지하거나 내리면 보수라는 이분법은 왕이 죽었을 때 왕의 계모는 상복을 몇 년동안 입어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나라가 반으로 갈라져 싸웠던 500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용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할 경제정책을 정치·신념의 문제로 만들어 놓은 게 박근혜노믹스를 아무 성과도 도출하지 못한 정책으로 만든 것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박근혜노믹스의 퇴장은 야권에게도 교훈을 주고 있다. 경제정책은 단번에 100미터씩 나아가는 것보다는 10미터라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철학이다. 그 자체가 경제주체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예산안 처리를 위해 3일 새벽에 열린 본회의에서 법인세 인상,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안을 부결시켜야 한다고 발언했다. 박근혜노믹스의 실패가 다른 정권에서도 되풀이되지 않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