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난 3일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경찰, 교사 등 공공 부문 일자리 예산을 500억원 늘린 것을 성과로 내세웠다. 그러나 고용노동 분야 확정 예산을 뜯어보면 일자리와 하등의 관련이 없는 지역 민원성 예산을 5억원 끼워넣고 취약층에 대한 취업지원 예산을 삭감하는 등 부적절한 심의가 적지 않았다.

서울의 한 대학 취업정보안내 게시판 앞에서 구직자가 취업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국회에서 확정된 내년 고용노동부 예산은 18조3000억원 규모로 정부안 대비 5000억원 정도 감액됐다. 그동안 200~300억원 규모로 조정 돼왔던 고용부 예산이 큰 폭으로 깎인 것은 고용부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노동개혁법 관련 예산에 전부 메스를 댔기 때문이다.

노동개혁법은 박근혜 정부가 4대 구조개혁(공공·교육·금융·노동)을 실현하기 위해 추진한 법안으로 근로기준법, 산재보험법, 고용보험법, 파견법 개정안을 말한다. 환노위 의원들은 내년 고용부 소관 법안 중 노동개혁 4법을 상정하지 않기로 했고, 정부가 이 법안 통과를 전제로 예산안에 포함한 구직급여와 산재보험급여 예산이 각각 3262억원, 1281억원 깎았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환노위가 정부 예산안을 이렇게 많이 깎은 적이 없었는데 그만큼 예산 심의가 깐깐하게 이뤄졌다"면서 "작년 대비 집행이 부진한 사업에 대해서는 거의 예외 없이 메스를 댔다"고 설명했다.

고용부의 대표 취업지원 사업인 취업성공패키지 관련 예산도 큰 폭으로 깎였다. 취업성공패키지는 정부가 청년에게 구직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취업상담 때 20만원을 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직업훈련 기간에 월 40만원의 훈련수당을 주고 면접비용으로 20만원, 취업 성공 땐 추가 수당을 준다. 정부가 지원하는 일자리 사업 중에서 실제 취업으로 이어진 사례가 가장 많다고 평가 받는다.

그런데 국회는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취업성공패키지 사업 예산을 100억원 가까이 감액했다. 취업성공패키지 사업 예산이 총 3405억원 규모인데, 이중 장애인 대상 사업 예산이 38억6000만원,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은 8억9300만원이 깎였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사업 예산도 50억원 감액했다. 이로 인해 당초 정부는 내년에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을 총 34만명에 대해 지원할 예정이었지만 1만3000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는 이 사업의 집행 실적이 부진했다는 이유로 예산을 깎았다. 작년 기준으로 취업성공패키지 지원 사업에는 본예산과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합해 6000억원 넘는 예산이 지원됐는데 집행률은 75.9%에 불과해 불용이 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취약계층의 일자리는 경기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단기 집행 실적을 근거로 지원사업을 축소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는 취업성공패키지 사업 뿐 아니라 청년층과 단기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 사업 예산도 감액했다.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 예산은 32억5600만원, 실업자 능력개발 지원 사업 예산도 18억6400만원 깎았다. 청년내일채움공제 제도는 중소기업 인턴을 통해 취업한 청년들에게 주던 지원금을 그때그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적립해 주는 제도다.

국회의원들이 일자리 사업과 관련이 없는 지역구 민원 예산을 끼워넣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환노위는 노사평화전당 건립 사업을 5억원 증액했는데, 당초 정부안에는 없던 사업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공들여온 사업으로 대구를 지역구로 하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합심해 최종 예산에 포함시켰다.

노사평화전당은 노사평화 선진도시의 상징으로 대구에 건립될 예정인데, 취약계층 실업률이 고공행진하는 와중에 예산이 부족해 일자리 관련 사업을 5000억원 깎는 와중에 뜬금없는 민원사업 끼워넣기라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