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캐나다 휘슬러의 슬라이딩 센터. 2차 레이스를 마친 윤성빈(22·한국체대·사진)은 전광판의 기록을 확인한 뒤 헬멧을 벗으며 "야"라고 고함을 질렀다. 우승을 자축하는 세리머니였다.

이날 윤성빈은 2016~2017 시즌 첫 월드컵 대회 남자 스켈레톤에서 1·2차 레이스 합계 1분45초86으로 우승했다. 세계 스켈레톤계는 마치 '대관식'을 방불케 하는 말로 그의 우승을 다뤘다. 대회를 중계한 IBSF(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TV 해설가는 "(스켈레톤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했다. IBSF 홈페이지는 "2018 평창올림픽을 앞둔 올림픽 직전 시즌의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했다"고 전했다.

이 대회엔 10년 가까이 정상을 지킨 '썰매계의 볼트' 마틴 두쿠르스(32·라트비아) 등 세계 최고수 28명이 출전했다. 지난 시즌을 세계 2위로 마친 윤성빈의 앞에는 7시즌 연속 시즌 챔피언에 오른 두쿠르스가 '거대한 벽'이었다. 지난 시즌 8차례의 월드컵 대회에서 두쿠르스가 7번 우승했다. 윤성빈이 이긴 것은 금메달을 목에 건 7차 대회(스위스 생모리츠·2016년 2월) 한 차례뿐이었다.

그러나 두쿠르스는 4위(1분46초26)에 그쳤다. 그가 월드컵 메달권에서 탈락한 건 2013년 12월 레이크플래시드 대회 이후 36개월 만이었다. 그는 최근 21개 대회에서 연속으로 2위 이내를 기록하는 경이로운 성적을 내고 있었다. 나이에 따른 기량 하락인지, 일시적 부진인지는 불명확한 가운데 두쿠르스의 모국인 라트비아 현지 언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전 썰매에 문제가 생겼는데 제대로 보완하지 못한 결과"라거나 "식이요법을 바꾼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등 해석이 분분하다. 2위는 합계 1분45초98을 기록한 2014 소치 대회 금메달리스트 알렉산드르 트레티야코프(러시아), 3위는 소치 대회 동메달리스트 미국의 매슈 앤트완(1분46초22)이었다. 두쿠르스는 소치 대회 은메달리스트였다. 소치 대회 메달리스트 3명이 전부 윤성빈 발밑에 있었다.

거침없이 성장하는 윤성빈이 스켈레톤 입문 5년차에 일인자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올렸다. 4일 월드컵 1차 대회가 열린 캐나다 휘슬러 슬라이딩센터에서 윤성빈이 스타트하는 모습. 그가 두쿠르스를 제치고 우승하자“새 시대가 열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평범한 체대 입시생이었던 윤성빈은 2012년 스켈레톤 입문 이후 매 시즌 한국의 썰매 역사를 갈아치우고 있다. 그는 스켈레톤에서 가장 중요한 '스타트'와 '주행 경험' 부분에서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는 평가다. 지난 6월 국내에 개장한 아이스스타트 훈련장은 괴물처럼 발전하는 윤성빈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비시즌에는 우레탄 바닥에서 스타트 훈련을 하고 체력 훈련에만 집중했던 열악한 여건이 180도 바뀌었다. 지난 10월 초부터 출국 전까지 한 달가량 평창 트랙에서 실전 훈련까지 거치며 겨울처럼 생생한 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문 5년 차를 맞은 윤성빈은 세계 15개 썰매 경기장 코스에 어느 정도 숙달되면서 자신감도 한층 향상됐다. 이번 대회를 마친 뒤 IBSF TV와의 인터뷰에서 윤성빈은 1차 레이스 당시 특정 구간에서 매끄럽지 못했던 점을 거론하며 2차 레이스에서는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완해 우승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단점으로 작용했던 코스 경험치가 이제는 장점이 되는 단계로 진입한 셈이다. 안방인 평창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한편 지난 시즌 남자 봅슬레이 2인승 세계 1위였던 원윤종(강원도청)과 서영우(경기도연맹)는 전날 1·2차 레이스 합계 1분44초69로 동메달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