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이 되면 사회 비판적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하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

7일 개봉하는 지진·원전 재난영화 '판도라'는 작년 여름 촬영을 마친 뒤 개봉까지 1년 반이 걸렸다. 제작진은 "특수효과 장면이 영화의 60%를 넘는 데다, 원전 현장감을 살리기 위한 후시(後時) 녹음 등에 시간이 걸렸다"(박정우 감독)고 했다. 최근 영화의 후반 작업이 완성도를 위해 길어지는 추세인 것을 감안하면 일리 있는 설명. 그럼에도 현 정부가 잦은 인재(人災)로 비난받은 탓에, '외압 때문에 개봉이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뚜껑이 열린 '판도라'에는 '반(反)원전' 메시지가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이 때문에 "정권 힘 빠지길 기다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영화, 사회 치부에 정조준

21일 개봉하는 '마스터'(감독 조의석)에선 배우 이병헌이 정경유착을 통해 부(富)를 쌓은 희대의 사기꾼 역할을 맡아 경찰 지능범죄수사팀장(강동원)과 대결한다. '판도라'와 '마스터'가 맞붙는 올 연말은 '몸풀기'에 불과하다. 내년엔 '정권 말 맞춤형' 부패·권력 비판 영화들이 줄을 섰다. 설 대목에 풀릴 예정인 '더 킹'(감독 한재림)에서는 정우성과 조인성이 권력을 쥐고 '현대의 왕'으로 군림할 꿈을 꾸는 정치 검사로 출연한다. 최민식·황정민·이정재 주연의 '신세계'를 만든 박훈정 감독의 신작 'V.I.P.'도 있다. 북한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받아 쫓기는 스릴러. '국정원 선거 댓글 알바' 등 민감한 정치적 소재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특별시민'에선 배우 최민식이 3선에 도전하는 서울시장이 돼 부패 정치의 흑막을 드러낸다. 현재 극장가에선 간첩조작 사건 다큐 '자백'(감독 최승호)이 14만 관객(3일 현재)을 모으는 등, 정치 소재 독립 다큐들이 뜻밖의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다.

정권 말 현상? 사회의 반영?

"정부 눈치 보던 영화들이 정권 말에 쏟아지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사회 비판적 관점은 최근 한국영화의 대표적 흥행 코드"로 보는 의견이 맞선다. 올해는 '터널'(712만) '아수라'(259만)가 그랬고, 작년엔 '내부자들'(916만) '베테랑'(1341만)이 박스오피스를 흔들었다. 2014년엔 '군도: 민란의 시대'(477만)가, 2013년엔 '변호인'(1137만)이 있었다.

사회 비판 영화가 쏟아지는 것은‘정권 말 현상’인가.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마스터’는 정관계 인사들이 개입된 사기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 내년에도 사회 비판적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과거에도 2007년엔 '화려한 휴가'가, 2012년엔 '광해, 왕이 된 남자' '범죄와의 전쟁' '26년' 등이 정권 말기에 개봉해 흥행했다. CJ E&M이 투자·배급을 맡은 '광해'는 1232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박근혜 정부에 찍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됐다는 보도도 최근 나왔다. "영화 '광해'가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황희연 영화평론가는 "상업적 전략에 맞춰 영화를 찍어내던 과거 기획영화 시대와는 관객 수준이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지금 영화들은 사회 분위기를 한발 앞서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사실관계가 비교적 분명한 사건을 소재로 삼았던 과거 사회 비판적 영화들과 달리, '내부자들'로부터 '판도라' '마스터' '더 킹'으로 이어지는 최근 영화들은 우리 사회의 부패상 이면에 어떤 '악마적 본질'이 숨겨져 있다고 보고 이를 재구성하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