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자·대기업 세부담 약 2조원 증가
힘 강해진 야권, 조세 형평성 구현 관철

여소야대(與小野大)구도인 20대 국회가 처리한 첫 세법(稅法) 개정안은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 인상과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 혜택 축소가 중점으로 이뤄졌다. 야권에서 주장해온 과세 기반 확충과 조세 형평성 구현이 이뤄진 것이다. ‘부자 증세’를 향한 한 걸음 전진이다.

국회는 2일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열어 고소득자와 기업들에 대한 세부담을 늘린 2017년 세금 제도를 결정했다. 과반이 넘는 의석수를 차지한 야권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안 카드를 협상카드로 활용해 연간 5억원 이상을 버는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현행 38%에서 40%로 2% 포인트 인상하고, 다수의 비과세 혜택을 축소시켰다.

또 대기업들에 대해서는 야권에서 추진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미루는 대신 R&D(연구개발) 세액공제 등 비과세·감면 혜택을 줄였다. 대기업 공익법인에 대해 향후 성실공익법인 추가 지정을 금지하고, 의무지출 비율도 1%로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연간 5억원 이상을 버는 4만6000명의 고소득자들은 최대 1000만원의 소득세를 더 내야 한다. 대기업들은 R&D 세액공제액이 최대 2000억원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앞서 발표한 세법개정안의 고소득자·대기업 세금 부담액 약 7000억원까지 포함하면 내년에 약 2조원의 세금이 더 부과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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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각종 공제 한도 축소

야권은 현행 과세표준 200억원 초과 22%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3%포인트 올리는 방안을 강행하다 막판에 보류시켰다.

그대신 야권은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을 얻어냈다. 과세 기반 확충과 조세 형평성 구현을 위한 대표적인 ‘부자 증세’다. 현재 소득세는 과세표준 1200만원 이하 6%, 1200만원~4600만원 24%, 4600만원~8800만원 24%, 8800만원~1억5000만원 35%, 1억5000만원 초과는 38%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소득세 최고구간에 과세표준 5억원 초과 구간이 신설된다. 1억5000만원~5억원 까지는 현행 최고세율 38%를 적용 받지만, 5억원 초과는 2% 포인트가 올라간 40%의 세율이 부과된다. 소득세를 더 내야 하는 대상자는 소득세 과세표준 5억원 초과 고소득자들이다. 비과세 감면 등을 감안하면 연소득 6억원 이상의 사람들에게 증세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총 4만6000명으로 추산된다. 근로소득자 6000명, 종합소득자 1만7000명, 양도소득자 2만3000명이다.

4만6000명의 세금은 얼마나 오를까. 과세표준 6억원 대상자는 약 200만원, 8억원은 약 600만원, 10억원은 약 1000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할 것으로 예측된다.

야권은 고소득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비과세 제도도 정비했다. 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48%에 달하는 상황에서 비과세 제도 혜택이 엉뚱하게 고소득층에게 돌아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연금저축자의 종합소득금액이 1억원(총 급여 1억2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연금계좌세액공제 한도를 현행 4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축소했다. 이는 세액공제 혜택이 상대적으로 저축 여력이 있는 고소득자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근로소득자의 6.2%인 연소득 8000만원 초과자의 65.7%가 연금계좌세액공제를 적용받고 있으며, 전체 공제세액의 33.2%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소득 8000만원 초과자들의 연금저축 가입률은 25.7%로 2000만원 이하 소득자(3.8%)의 약 7배에 달한다.

계약기간이 10년 이상인 납입규모 2억원 이하의 장기저축성 보험에 대한 비과세 한도도 축소됐다. 장기 저축성 보험 비과세 한도는 현행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조정된다. 현재 저축성보험은 10년 이상 유지하거나 일시납으로 2억원 이하를 내면 비과세가 된다. 이 역시 일시에 목돈을 마련해 장기간 거치해 놓을 수 있는 고소득자들을 위한 세제라는 논란 때문에 개정됐다.

야권은 정부의 월세 세액공제 인상방안도 보류시켰다. 정부는 월세 세액공제율을 현행 10%에서 12%로 인상하는 방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야권은 세원이 노출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 때문에 공제 신청 증가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고, 주택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가 전제되지 않아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논의를 보류시켰다.

그 과정에서 월세 세액공제가 고소득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지적도 나왔다. 야당 측에서는 월세 세액공제 대상 기준을 현행 총 급여 7000만원 또는 종합소득 6000만원 이하에서 총 급여 5500만원 또는 종합소득 4500만원 이하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주장하기도 했다. 정부와 여야는 절충점을 찾아 월세 세액공제 인상을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고소득자들은 내년부터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도 축소된다. 연간 급여소득이 1억2000만원이 넘는 근로자에 대한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는 내년부터 200만원으로 줄어든다. 현행 한도는 300만원이다. 연소득 7000만원∼1억2000만원 근로자의 신용카드 공제한도는 야당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오는 2018년부터 3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축소된다. 정부의 당초 계획은 오는 2019년부터 한도를 축소하는 것이다.

고액자산가에 대한 규제 역시 강화된다. 10억원 이상을 받는 상속인에 대한 신고세액 감면이 10%에서 7%로 축소된다. 상속세를 100억원 내야 할 경우 여태까지는 신고만 하면 10억원을 공제받는데 앞으로는 7억원만 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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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세제 혜택 축소·공익법인 규제 등 처리

야권은 법인세 세율 인상 대신 대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축소했다. 내년부터 대기업 R&D 세액공제율이 축소된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으로 공제하는 '당기분 방식'의 기본공제율이 2%에서 1%로 축소된다. 그동안은 1000억원의 R&D 투자를 했다면 자동적으로 20억원 세금을 감면해줬는데 앞으로는 10억원만 해준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제 방식인 '증가분 방식' 역시 대기업은 40%에서 30%로 줄어든다. 가령 올해 R&D 투자액이 지난해에 비해 100억원 늘었다면 여태까지는 40억원가량을 감면받았는데 앞으로는 30억원만 공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대기업 R&D세액공제액이 77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1000억~2000억원 세제혜택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의 신성장기술 투자액 공제 범위도 7%에서 5%로 축소된다.

대기업들의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도 강화됐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앞으로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될 수 없다. 현재 공익법인들은 상속·증여세법 제48조에 의해 특정 기업의 주식을 5%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으며 출연받을 수 있다.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되면 10%까지 가능하다. 삼성 등 대기업들은 성실공익법인으로 대부분 지정돼 있다. 하지만 앞으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성실공익법인 제도의 혜택을 신청할 수 없다. 다만 소급 적용은 안된다. 현재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된 대기업들은 그대로 혜택이 유지된다.

공익법인 의무지출 제도도 도입된다. 공익법인은 오는 2018년부터 사용하는 건물 등 고유 목적용 자산을 제외하고 주식 등 출연받은 투자성 자산의 1%를 매년 공익사업에 써야 한다. 정부는 1% 비율을 시행령에 명시할 예정이다. 지금은 보유 주식의 배당 등 자산 운용 수입의 70%(성실공익법인은 80%)만 공익사업에 쓰면 된다. 배당 수익이 1000만원일 때 700만원만 공익활동에 지출하면 문제가 없다. 자산 운용 수입이 없다면 공익사업에 한 푼도 쓰지 않아도 된다.

대부업자 및 대부중개업자에게도 교육세 과세 의무가 부과된다. 여태까지는 금융회사들이 매년 약 1조원에 달하는 교육세를 부담해왔는데 그 납부의무 대상을 합법적으로 등록하여 영업 중인 대부업자와 대부중개업자까지 확대한 것이다.

국회는 분식회계로 매출액을 부풀린 뒤 이를 기준으로 과다하게 낸 법인세를 되돌려달라고 요구한 대우조선해양에 환급을 금지하는 법안도 처리했다. 매년 환급액의 20%만 납부세액에서 공제하고 환급은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야권은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명의만 법인으로 되어 있는 이른바 '가장(假裝)법인'에 대해 법인세를 추가 과세하는 방안도 관철시켰다. 이는 최근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이 사무실도 없는 가족 회사를 운영하며 세금을 덜 냈다는 의혹이 불거짐에 따라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국회와 정부는 조세회피 법인에 대해 접대비 한도를 50% 축소하고, 업무용 승용차 운행기록 미작성시 손금인정 범위를 축소하기로 했다.

야권은 기업소득환류세제의 배당 인정 비율도 50%로 축소하기로 했다. 정부가 당초 국회에 제출한 배당 인정 비율은 80%였다.

면세점 특허기간 연장은 여야 모두 동의 아래 무산됐다. 정부는 현재 5년으로 묶여있는 면세점 특허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고, 10년 기간이 만료돼도 일정한 요건과 심사 기준을 통과하면 자동 갱신을 허용하기로 했다. 여야는 ‘최순실 사태’로 면세점 허가 과정에 의혹이 있는 만큼 관련 법안 처리를 보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