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수립중인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은 4차 산업혁명의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정책과제를 구체화해 민간의 경제활력을 제고하고 민생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도 담을 계획이다." (11월 16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세계경제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커다란 변곡점에 들어서고 있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한국경제가 새롭게 도약하느냐, 이대로 주저앉고 마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10월 27일, 최상목 기재부 1차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요즘 4차 산업혁명이 화두입니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이 이끄는 신산업이 확산하며 경제와 사회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요국 경제계 유력인사들이 모이는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올해 주제도 산업혁명이었습니다.

최근 몇 달 사이 공식 행사도 부쩍 늘었습니다. 최상목 1차관은 지난달 24일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1~2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로 열린 글로벌 산업경제 포럼의 주제도 ‘제4차 산업혁명과 산업의 융·복합’이었는데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상당수 참석했습니다.

중장기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하는 중장기 전략위원회의 주요 과제도 4차 산업혁명입니다. 이 위원회는 기재부 1차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관계부처 차관, 그리고 국책연구소와 학계 등 민간위원들 19명이 참여합니다. 지난달에는 인공지능 전문가로 김현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민간위원으로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전세계 주요국의 관심사인 4차 산업혁명에 공무원들이 이렇게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워보입니다. 독일은 지난 2012년 산업혁신을 위한 '산업 4.0 특별작업반'이 구성돼 정부 주도로 4차 산업혁명에 차근차근 대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작년 11월 "3년 안에 택배 배달용 드론, 5년 안에 자율주행버스를 상용화하라"는 특명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①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영화 아이로봇의 한 장면. ②일본에 생긴 세계 최초 인공지능 호텔인 ‘헨나’. 사진에 보이는 직원은 모두 로봇이다. ③닥터 왓슨을 활용해 진단하는 모습. ④골프 로봇 ‘엘드릭’. ⑤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탑재 자율주행 자동차.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갑자기 왜 떠오르게 된 것인지, 또 이렇게 벼락치기 공부를 하듯 다급하게 추진한다고 되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4차 산업혁명은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의제였습니다. 선진국이 저만치 앞서나가는데 왜 논의가 없을까 의문이 있던 상황이었죠. 최순실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의 주요 정책과제였던 문화융성과 창조경제가 추진동력을 잃으면서 빈 자리를 4차 산업혁명이 채우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기재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는 최근 몇 달 사이 수차례 국내 전문가를 불러 간담회를 갖고 정책 제언을 들었지만, 정책으로 구현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는 걱정도 나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시간에 쫓겨 근시안적인 대책을 만드는 데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의 정책 추진 방식이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유망 신산업을 타겟팅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펴왔는데, 4차 산업혁명의 경우 어떤 신산업이 유망할 지 전문가들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가 거론하는 자율주행차, 드론, 사물인터넷 등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추측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들은 벼락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고 항변합니다. 기재부의 경우 상반기, 하반기, 그리고 연말에 세번씩 새로운 내용의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해야 하고 그 중간에 일자리 확대, 가계부채 관리, 부동산 시장 안정화 등 각종 대책을 준비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서 한 사안에 대해 오랜 기간을 갖고 정책을 고민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재부 안팎에서는 경제정책방향 횟수를 연간 1회 정도로 줄여 공무원들이 정책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기재부의 한 사무관은 "세종시에 내려온 이후에 외부 전문가들을 만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고 온라인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라면서 “정신없이 대책을 준비하고 나면 또 다음 대책이 기다리고, 그 다음엔 경제정책방향을 만들어야 해서 주요 이슈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습니다.

벼락치기도 되는 과목이 있고, 안되는 과목이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후자일 겁니다. 주요국이 앞서나가는 데 우리만 손놓고 있을 순 없다는 공무원들의 심정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20년을 책임질 수도 있는 대변화인 만큼 보다 조금 늦더라도 정교하고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