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코엑스 1층에 마련된 창조경제박람회 메인 행사장. 카카오가 동국대 영상대학원과 마련한 '좀비 VR(가상현실)' 스튜디오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중·고생 20여명이 줄지어 있었다. VR 기기를 쓰고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 좀비와 맞닥뜨리는 가상현실 체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자율 주행차 시승 시뮬레이션을 체험할 수 있는 현대·기아자동차 부스에도 비슷한 인원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같은 시각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부스 쪽은 상황이 확연히 달랐다. 부스 내 회사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2~3명 정도가 잠시 들러 구경하는 정도였다. 스타트업 관계자들끼리 얘기를 나누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무료함을 달래는 사람도 보였다. 그나마 SK텔레콤·네이버 등 대기업이 주축인 부스들과 함께 1층에 있던 스타트업은 나은 편이었다. 벤처와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3층 전시관 부스들은 썰렁할 정도였다. 한 참가자는 "기업들이 준비한 것에 비하면 관람객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열었지만…

미래창조과학부, 중소기업청, 특허청, 민관 합동 창조경제추진단 등 13개 정부 기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 박람회는 이날 오전 해당 부서 장관 등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을 열었다. 올해로 4회째인 박람회는 '내일의 변화, 오늘에 담다'는 주제로 나흘간 진행된다. 이 박람회는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이 두 차례나 직접 참석할 정도로 관심을 가진 행사였다. 특히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로 준비됐다. 참여 기관·기업이 작년 1109개에서 1687개로 늘었고, 전시 부스도 작년 1607개에서 1852개로 증가했다.

벤처기업 모인 3층은 한산… 대기업 많은 1층은 북적 -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창조경제 박람회’의 첫날 모습. 3층에 마련된 벤처기업 부스는 한산(위 사진)한 반면, 1층에 있던 대기업 부스에는 관람객이 몰렸다(아래).

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창조경제 성과를 소개하는 박람회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창조경제박람회는 내년에도 계속 될 것"이라고 애써 담담하게 말했지만, 현장에서는 "'창조경제' 이름을 단 대규모 행사는 사실상 올해가 마지막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해에도 박람회에 참가했던 모공 관리 전문 벤처 대표인 김모(57)씨는 "1년 전 행사 첫날 때보다도 전체 관람객이 절반 수준"이라며 "우리 부스를 찾은 바이어는 오늘 단 한 사람뿐이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내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내년도 예산을 완전히 없애거나 삭감해버렸다.

◇"창조경제 간판 내려도 스타트업 육성은 계속해야"

행사장에서 만난 벤처인과 정부 인사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 때문에 벤처 육성 정책까지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아기 건강관리용 IT(정보·기술) 기기 개발업체를 운영하는 30대 벤처인은 "최순실 사태로 스타트업이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라며 "창조경제센터 지원을 받은 회사들이 마치 비리에 가담한 것처럼 비쳐 안타깝다"고 했다. 또 다른 벤처인은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아예 물길이 끊어질 위기"라며 "스타트업이 막 커 나갈 때 더 밀어줘도 신통찮을 판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미래부 고위 관계자도 "설령 '창조경제'라는 간판은 내리더라도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면 안 된다"고 했다.

대기업만으로는 고용 창출과 성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스타트업 육성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경환 성균관대 글로벌창업대학원 교수는 "벤처 육성이 한국 경제의 유일한 돌파구"라며 "단순히 한 정권(政權)의 어젠다가 아닌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