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주요 대기업 인사 시즌을 맞이해 임원용 법인차 시장을 둘러싼 자동차 업체들의 판매 경쟁이 치열하다.

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 임원용 법인차 시장 규모는 연간 약 3만대 정도로 추산한다. 30대 그룹을 기준으로 보면 시장 규모가 연간 1500~2000대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내 자동차시장 규모가 연간 180만대 수준임을 감안할 때 임원용 법인차 시장의 규모는 그리 큰 편이 아니다.

그러나 기업의 ‘별들(임원)’이 타는 차라는 상징성 때문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연말과 연초 단기간에 많은 차량을 판매할 수 있어 자동차업체로선 결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특히 준대형 세단 판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임원 직급 중 비중이 가장 큰 상무급이 주로 준대형 선택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임원 294명 승진 인사를 발표하는 등 매년 가장 많은 수의 임원 승진 인사를 하는 삼성그룹의 경우 상무급은 배기량 3000cc 미만의 차량을 선택하도록 돼 있다.

대기업 임원용 법인차 시장에서는 단연 현대자동차가 전통적인 강자다. 오랜 기간 임원용 법인차 시장에서 꾸준히 높은 판매 실적을 올린 차종은 그랜저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최근 몇년간 임원용 법인차 시장에서 계열사인 기아자동차의 약전으로 다소 주춤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해의 경우 기아차가 신형 K7을 앞세워 임원용 법인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삼성그룹은 상무급 승진 임원 220명 중 106명이 K7을, 79명이 그랜저를 각각 선택했다.

하지만 올해는 현대차의 신형 그랜저가 돌풍의 바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출시된 신형 그랜저는 5년만에 완전히 바뀐(풀체인지) 6세대 모델로 호평받고 있다. ‘왕의 귀환'이 예고돼 있다.

한편 대부분의 대기업은 임원용 법인차량 선택 목록에서 수입차를 제외하고 있다. 수입차가 아직 국내 정서상 사치재로 인식되고 있는 데다 상무급 임원들에 지급하는 차량 가격을 4000만원 안팎으로 잡고 있어 값비싼 고급 수입차들이 임원용 법인차 시장에 뛰어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 임원용 車 시장에 불어닥친 ‘그랜저 태풍’…예약차량 10대 중 3대가 법인차

지난 22일 신형 그랜저 신차 출시 설명회에서 양웅철 현대차 부회장(오른쪽)과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총괄 사장이 그랜저를 소개하고 있다.

올해 임원용 법인차 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차종은 현대자동차의 신형 6세대 그랜저다. 현대차는 임원용 법인차 판매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연말 인사 시즌보다 앞선 지난달 22일 신형 그랜저를 출시했다.

현대차는 특히 임원 인사 규모가 가장 큰 삼성그룹을 겨냥해 삼성 전용 트림인 ‘삼성 에디션’을 고안했다. 신규 임원이 된 상무급이 배기량 3000cc(3.0 모델) 미만, 차값 4000만원 이하 차량을 선택해야 하는 삼성의 내부 방침을 고려해 4000만원 이하 3.0 모델 차량에 상위 트림에 들어가는 옵션 일부를 추가했다.

현대차는 본격적인 판촉을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에 그랜저 전시장을 마련해 시승차량을 투입했다. 현대차는 삼성 이외에도 법인용 차량 구매가 많은 주요 그룹을 순회하며 시승차를 제공하고 있다.

신형 그랜저는 지난 2일부터 출시 전날인 21일까지 3주 동안 2만7000여대의 사전계약 건수를 기록하며 인기몰이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사전계약 차량 중 30%에 해당되는 8000여대가 법인차로 계약됐다. 그랜저가 이미 기업 임원용 차량 판매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신형 그랜저는 전면부에 대형 캐스캐이딩그릴을 적용하는 등 외관 디자인을 크게 바꿨다. 또 지능형 안전기술 브랜드인 ‘현대 스마트 센스’를 탑재해 안전과 편의사양도 기존 모델에 비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신형 그랜저는 올해 판매 부진에 시달렸던 현대차가 반전 카드로 내놓은 전략 차종이다.

◆ “그랜저 독주 막아라”…기아차·한국GM 등 차별화 마케팅 안간힘

신형 그랜저의 독주를 막기 위한 나머지 자동차 업체들의 마케팅도 가열되고 있다.

지난해 신형 K7으로 임원용 법인차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기아자동차는 현대차의 신형 그랜저 출시로 올해는 고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반 가솔린 차량의 판촉 활동과 함께 ‘틈새시장’으로 하이브리드 차량을 판매하는 데도 주력할 방침이다.

지난해 기아차는 신형 K7을 앞세워 임원용 법인차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사진은 신형 K7

기아차는 지난달 29일 K7의 하이브리드 모델인 ‘올 뉴 K7 하이브리드’를 출시했다. K7 하이브리드는 복합연비가 리터당 16.2km로 개선됐고, 차체의 크기도 K7보다 늘어났다. 또 기존 K7 하이브리드 모델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헤드업 디스플레이 ▲스마트 트렁크 ▲크렐(KRELL) 프리미엄 사운드 ▲무릎에어백을 포함한 9에어백 (앞좌석 어드밴스드 포함) 등의 안전사양도 새로 적용했다.

기아차는 특히 LG그룹에 기대를 걸고 있다. LG그룹은 임원들에게 LG화학이 만든 배터리가 탑재된 하이브리드차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는데, 신형 K7 하이브리드에 LG화학 배터리가 들어간다. 기아차가 LG그룹의 임원인사 발표일인 12월 1일보다 앞선 11월 29일을 신형 K7 하이브리드 출시일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아차는 주요 그룹들의 인사철에 맞춰 29일 신형 K7 하이브리드를 출시했다. 사진은 김창식 기아차 국내영업본부장(왼쪽)과 배우 공유씨(오른쪽)가 신형 K7 하이브리드를 소개하는 모습

기아차는 LG그룹에 4대의 신형 K7 하이브리드 전시 차량을 두고 임원들을 대상으로 시승차도 운영한다. 다른 주요 그룹에도 15대 안팎의 전시·시승차를 제공하기로 했다.

한국GM도 신형 그랜저 출시로 준대형 세단인 임팔라의 임원용 법인차 판매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GM은 임원 인사 규모가 가장 많은 삼성그룹을 비롯해 GM과의 파트너십이 강한 포스코 등 판매 대상 그룹을 좁히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GM에 강판을 수출하고 있어 지난해에도 신규 임원들 전원이 임팔라를 선택한 바 있다. 한국GM은 미국에서 수입하는 임팔라의 공급부족 문제도 개선해 임원들이 임팔라를 선택할 경우 하루만에 공급받을 수 있도록 조치할 방침이다.

한국GM 관계자는 “서울과 수원, 용인 등에 위치한 삼성전자(005930)계열사는 물론 금융 관련 계열사와 중공업, 건설 관련 계열사 등에도 임팔라 시승차를 배치할 예정”이라며 “이미 많은 차가 판매돼 희소성이 떨어진 그랜저보다 미국에서 직수입하는 임팔라의 브랜드 프리미엄을 신규 임원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GM 쉐보레 브랜드의 임팔라. 한국GM은 미국에서 직수입해 판매하는 임팔라의 브랜드 가치를 부각시켜 신형 그랜저의 공세에 대응할 계획이다.

르노삼성은 상대적으로 임원용 법인차 판매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준대형 세단인 SM7은 V6엔진이 탑재돼 4기통 엔진을 쓰는 신형 그랜저보다 가격이 300만원 이상 비싸다”며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데다, 신차인 그랜저에 비해 이렇다 할 특장점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임원용 법인차에 대한 특별한 판매전략은 구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대상 차량보다 렌터카와 LPG 차량을 중심으로 판매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