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실패해 본 적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한 번도 혁신적(innovative)이었던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29일(현지 시각) 핀란드 헬싱키 모바일 게임 회사 수퍼셀(Supercell) 본사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으로 화려했다. 한때 노키아 R&D(연구개발) 센터였던 7층짜리 건물의 6층(약 1500㎡)을 수퍼셀이 통째로 사용하고 있다. 직원 서너 명이 부엌에서 선 채로 커피를 마시며 회의하는 사이, 일카 파나넨(38·Ilkka Paananen) 수퍼셀 창업자 겸 CEO가 회사 로고가 새겨진 검정 반팔 티셔츠에 양말 바람으로 나타났다. 그는 북유럽 최대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콘퍼런스 '슬러시(Slush)' 개막을 하루 앞둔 이날 외신 기자 간담회를 열고 "혁신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데 실패는 필수 요소"라고 말했다.

수퍼셀은 '클래시오브클랜' '붐비치' '헤이데이' '클래시로얄' 등 온라인 모바일 게임 4개를 연이어 성공시켰고 지난해 연 매출 2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4개 게임은 현재 전 세계 평균 사용자가 하루 1억명에 달한다. 지난 6월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모바일 기업 텐센트가 무려 86억달러(약 10조원)에 수퍼셀을 인수해 세계 게임업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일카 파나넨 수퍼셀 CEO(최고경영자)가 29일(현지 시각) 핀란드 헬싱키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그는“혁신을 하기 위해선 실패는 필수 요소”라며“재밌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나도 숱한 실패를 거쳤다”고 했다.

그는 출시하는 게임마다 성공하는 비결을 묻자 "사람들은 수퍼셀이 내놓은 게임마다 성공을 한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수없이 많은 실패를 했다"면서 "지난 2년 동안만 해도 게임 10개를 개발했지만, 클래시로얄 하나만 정식으로 출시됐고 나머지 9개는 테스트 단계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파나넨 CEO는 수퍼셀이 매출 3조원에 육박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개발자 5~6명으로 구성된 '셀(cell·세포)'이 스스로 게임 출시 여부와 시기 등을 결정한다고 했다. 그는 "개발자들은 자기가 만든 게임을 시장에 내놓아도 될지 아닌지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개발자들에게 수많은 보고서를 통해 성공할 것이라는 증거를 요구하고 여러 단계의 결재 과정을 거치게 하면서 정작 타이밍을 놓치는 게 더 나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문화가 혁신의 열쇠"라고도 했다.

회사가 비대화·관료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파나넨 CEO는 "회사를 가능한 한 작은 규모로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퍼셀의 헬싱키 본사 직원은 150명, 전 세계 지사를 모두 합쳐도 고작 210명에 불과하다. 그는 "수퍼셀은 수천 명을 고용할 수 있는 대기업이 아니다"면서 "외부에 있는 스타트업을 키우는 방식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찾는다"고 말했다. 수퍼셀은 지난 9월 프로그마인드(Frogmind)라는 핀란드 게임 스타트업에 780만달러(약 91억원)를 투자하는 등 핀란드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텐센트의 수퍼셀 인수에 대해서는 "텐센트는 게임 산업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회사"라면서 "특히 개발자들의 독립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 게임 개발과 경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나넨 CEO는 헬싱키대를 졸업한 뒤 2000년 수메아라는 게임 업체를 차렸다. 2004년 이 회사를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디지털 초콜릿이라는 회사에 매각했으며, 2010년 친구 4명과 함께 수퍼셀을 창업했다. 게임 개발에 좌절한 팀에는 샴페인 파티를 열어주면서 '실패에서 무언가를 확실히 배웠다'는 것을 축하해 주곤 한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글로벌 기업을 일궈낸 그에게 앞으로 목표를 묻자, 그는 "내 목표는 가장 목소리가 작은 CEO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퍼셀이 앞으로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 내려면 CEO의 결정권은 작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수퍼셀의 성공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개발자에게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