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말 전국금융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며 대대적인 총파업을 벌였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인터넷 뱅킹이 워낙 잘 갖춰진 덕분에 소비자들이 막상 큰 불편을 겪진 않았지만, 수만 명의 은행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머리띠를 두른 모습에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노조는 9월 파업 때 "11월 중 2차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미리 공언을 했습니다. 성과연봉제를 놓고 노사 간 팽팽한 입장 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을 거란 사실을 이미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고했던 11월 말이 다 되도록 파업 소식이 없습니다. 언제로 파업을 연기하겠다는 얘기도 없이 단체 행동이 무기한 보류되는 상황인데요,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요?

일단 금융노조가 초유의 '최순실 게이트' 발생 이후 시국선언을 하느라 무척 바쁜 상황이 됐습니다. 은행별로 노조위원장 선거 시기까지 맞물리면서 각자 정치 일정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 것도 이유이겠고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표면적인 이유고, 속을 들여다보면 진짜 이유가 보입니다. 최순실 사태로 정부가 식물 상태가 되면서 성과연봉제 도입 자체가 물 건너가는 분위기라 파업의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지요.

성과연봉제는 잘만 도입된다면 이번 정부의 제대로 된 금융개혁 결과물로 꼽을 만했습니다. 업무 성과에 관계없이 입사 연차가 높다고 월급도 더 받는 호봉제를 쓰는 나라는 사실상 우리나라 은행뿐이고, 이것이 한국 금융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 때문입니다. 누가 손대도 댔어야 할 과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지요.

하지만 내년 1월부터 연봉제가 도입될 예정이었던 7개 금융공기업 노조는 효력중지 가처분을 낸 상태고, 다른 시중은행들은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분위기 봐서…'라며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 됐습니다.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에 세계 유례없는 호봉제는 질긴 생명을 연장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은 고통스러워도 멀리 내다보고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연봉제를 선택하는 은행도 나오게 될까요? 각자도생(各自圖生)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