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주제를 다루었는데도 빛나는 그림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페르메이르가 그린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른 아침 여염집 부엌, 하녀가 가족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빵을 접시에 놓은 하녀는 이제 막 넓은 사발에 우유를 따르고 있다. 머리에 쓴 흰색 두건이나 간소한 복장, 허리에 맨 푸른 앞치마는 당시 네덜란드 하녀들의 전형적 차림새였다. 장식이 없는 부엌 벽에는 짚으로 짠 바구니가 걸려 있고 못을 박았다가 뺀 자국이 드문드문 보인다.

이처럼 평범한 장면을 화가는 마법처럼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변신시켰다. 그림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빛의 효과 때문이다. 그림 왼편 창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실내를 부드럽게 감싸며 작은 부엌에 생동감과 신비로움을 불어넣는다. 하녀의 이마와 팔, 장식 없는 흰 벽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내리깐 시선, 두 손으로 우유 단지를 받쳐 든 하녀의 동작은 그녀가 이 단순한 일에도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작은 그림을 통해 우리는 소박한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의 작품 ‘우유를 따르는 여인’. 1658년에서 166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염집 부엌에서 하녀가 가족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그렸다.

하녀가 준비하는 아침 메뉴는 빵과 우유뿐이다. 그림의 아름다움에 감탄만 하지 말고 실용적 부분을 바라보면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빵과 우유는 이제 우리에게도 보편적 아침 식사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우유 한잔을 불편해한다. 우유의 성분인 유당을 분해하려면 락타아제라는 효소가 필요한데 이 효소가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모유를 소화하느라 락타아제가 몸속에서 분비된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락타아제 분비가 멈춘다. 어른이 되어서도 락타아제가 분비되려면 유전자(DNA)에 변이가 생겨야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전 세계를 통틀어 소화 문제 없이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성인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평범한 가정을 그린 게 아닐까.

그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덴마크, 스웨덴, 요르단, 아프가니스탄, 수단, 인도, 그리고 페르메이르의 고국인 네덜란드 등에는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DNA를 가진 성인 비율이 최고 90%에 이른다. 이 나라들은 모두 선사 시대부터 목축과 낙농업을 해온 지역이다. 오랫동안 우유를 주식으로 삼은 지역에서 돌연변이 유전자가 나타났고, 이 유전자가 서서히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보여주는 것처럼 네덜란드 사람들은 17세기에도 아무 문제 없이 우유를 마실 수 있었다. 네덜란드인 키가 유난히 큰 것도 이 점과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네덜란드 남자 성인 평균 키는 182㎝로 유럽 평균보다 4.4㎝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