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4년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윤아현(28)씨는 지난 6개월 간 경기도 소재의 한 식품가공업체에서 '학습근로자'로 지나다 올해 초 그만뒀다. 대기업과 공기업 취업에 모두 실패한 뒤 정부의 ‘일 학습 병행제’를 통해 정규직이 10명인 중소기업에 들어갔는데 교육생 신분인데도 정규직 사원들과 같은 업무에 투입됐다. 월급은 70%에 불과했고 야근과 주말 근무도 반복됐다. 3개월 정도 지나자 현장교육을 받는 시간은 거의 없어졌고, 정부에서 감사를 나올 때만 갑자기 예정에 없던 교육 시간이 생겼다.

지난 5월 31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채용박람회에 청년 구직자 4000여명이 몰렸다.

정부가 청년층의 조기 노동시장 진입을 돕기 위해 지난 2013년 도입한 '일 학습 병행제'가 질 낮은 단기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참여기업 중 신용등급 C 이하이거나 근로자 수가 50명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 훈련을 받은 인원 중 34%는 중도 탈락했고, 훈련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 10명 중 3명은 6개월도 안돼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일 학습 병행제의 모델이 된 '도제식 훈련'은 유럽에서도 성공한 국가가 있는 반면 실패한 케이스도 있다.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성공적으로 자리잡아 제조업 인력의 질을 높이고 기업들의 인력난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지만, 영국에선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 받는다. 실패 원인으로 정부가 양적 성과에 집착한 점이 지목되는데, 우리나라 정부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 참여기업 50개→7485개로 늘었지만 저(低)신용등급·중소기업 급증

정부는 지난 2014년 독일·스위스식 도제 훈련을 통해 청년의 구직기간을 단축하겠다며 '일 학습 병행제'를 도입했다. 인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청년을 학습근로자로 채용해 현장에서 6개월~4년 간 훈련시키고 채용까지 연계하는 방식이다. 기업이 정부에 신청을 하고 학습근로자를 모집해 교육한 것을 증빙하면 교육기간 만큼 근로자의 임금과 강사료 일부를 정부가 지원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일 학습 병행제 소개글

정부는 일 학습 병행제 참여기업 수를 내년까지 1만개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참여기업 수는 2013년 시범사업 때 51개에서 2014년 2028개, 2015년 3685개,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1721개로 총 7485개다. 이런 증가세라면 내년에 정부 목표치인 1만개 달성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참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추세를 보면 오히려 중소기업 비중이 급증했다. 50인 미만 사업장 비중은 2013년 39.2%에서 올해 69.2%로 높아졌다. 50인 이상은 2013년 60.8%에서 올해 30.8%로 감소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 지원사업인 ‘중소기업 청년취업 인턴제’와 이 사업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어졌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참여도 늘었다. 참여기업 중 신용등급이 A인 기업은 2014년 219개에서 올해 114개로, B등급은 1442개에서 1157개로 감소했다. 반면 C등급은 1개에서 169개로 늘었다. D등급 이하는 도입 초기에는 아예 없었지만 올해 5개로 늘었다.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용등급을 받지 못한 기업도 226개에서 342개로 증가했다.

정부는 제도 도입 초기까지만 해도 근로자 수, 신용등급 등 참여기업에 제한을 뒀지만 참여기업 수가 생각만큼 빠르게 늘지 않자 점점 요건을 완화했다. 덕분에 참여기업 수는 목표치와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했지만, 신용등급이 낮거나 상시근로자 수가 적은 기업 참여가 늘며 훈련 품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 참여자 중 32%가 중도 탈락…정규직 전환 후 6개월도 안돼 관두는 사람도 29%

지난 2014년 이후 일 학습 병행제로 훈련 받은 5056명 중에서 31.6%(1596명)는 중도 탈락했다. 훈련기간이 종료된 기업 821개 중에서 13%(113개)는 학습근로자 전원이 중도에 포기하기도 했다. 정부의 다른 일자리 지원사업인 중소기업 청년취업인턴제와 청년취업아카데미의 경우 중도 탈락률이 10~20%대인데 이보다도 중도 탈락률이 높은 것이다.

이 사업을 담당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지난 4~5월 중도 탈락자 163명을 대상으로 설명한 결과 33.8%는 근로여건 불만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다음으로는 근로여건이 더 좋은 기업으로 이직하기 위해서(28%), 일학습 병행제 훈련내용과 방식 등이 만족스럽지 못해서(10.6%) 순이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가 한 기업을 방문, 현장훈련교사와 학습근로자의 의견을 듣고 있다.

훈련이 끝나고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 중에서 29.3%는 6개월도 안돼 그만뒀다. 강세욱 예산정책처 사업평가관은 "기업이 훈련종료자에 대해 경력기간이 유사한 신규 입사자에 비해 낮은 임금을 주거나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등 차별 대우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현장 훈련을 받았는데도 재취업에 실패했거나 더 작은 규모의 기업으로 하향 이동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사업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훈련이 끝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재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이 48.3%에 달했다. 재취업에 성공한 경우에도 65.2%는 더 작은 규모의 기업으로 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