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애플 등 미국 대기업에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면 세금을 대규모로 줄여주는 등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공식 제안했다. 이들 기업이 해외에 보관하고 있는 현금을 미국 내로 다시 가져오겠다는 계산이다. 미국 기업의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다시 옮겨오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은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애플, 휴렛팩커드(HP) 등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 보관하고 있는 수익금을 회수하기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전화 통화를 갖고 큰 폭의 세금 인하를 포함한 여러 인센티브를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현재 미국의 법인세율은 3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그 판매 수익을 해외에 보관할 경우 법인세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 다국적 기업들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해외에서 얻은 수익을 미국에 다시 가져오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를 막기 위해 ‘특별 조세 감면’ 정책을 제안했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트럼프 당선인이 미 기업들에 현재 35%인 표준 법인세율이 아닌 특별 세율인 10%를 적용하는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10%가 너무 낮다면 최소 15%로 낮출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트럼프 당선인의 특별 세율 정책은 2004년 조지 부시 대통령 때 만들어진 세금 감면(Tax Holiday) 법안과 비슷하다. 이 법안으로 당시 미국 기업들에 법인 세율을 일반적인 35%에서 5.25%까지 낮춰줬다. 세금 감면 법안 이후 미 정부는 3150억달러(약 370조원) 규모의 세금을 미국으로 회수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애플이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지 않을 것을 대비해 ‘협박 카드’도 꺼내 들었다. 미국 기업이 해외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미국으로 역수출할 때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특히 중국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역수출하는 애플 제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아이폰 등 애플 제품은 중국과 대만 등지에서 제품을 조립해 미국으로 역수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애플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아직 애플은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 생산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면 제조 비용과 인건비 등 비용 면에서 큰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애플은 대만 폭스콘과 페가트론과 협력관계를 맺고 연간 2억대 규모의 아이폰을 생산하고 있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애플이 미국에서 아이폰을 대량 생산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45%의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미국에서 생산 설비를 만들고 운영하는 비용이 관세보다 더 높다면, 애플이 해외 공장에서 아이폰을 계속 생산하기로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는 아이폰을 생산하기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고 인건비도 중국과 대만보다 높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해 12월 미 CBS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미국에는 아이폰을 생산할 수 있는 숙련된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도 말한 바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6월 폭스콘과 페가트론에 미국에서 아이폰을 만들 수 있는지 검토를 요청했다. 지난 18일에는 폭스콘이 미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폭스콘은 미국으로 아이폰 제조 공장을 옮기게 되면 생산 비용이 두배 이상 급증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폭스콘의 애플의 매출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에 애플이 요청하면 미국으로 공장을 옮길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애플과 폭스콘, 페가트론은 모두 논평을 거부한 상태다.

멕 휘트먼 HP CEO와 팀 쿡 애플 CEO.

애플과 함께 트럼프 당선인의 세금 감면 제안을 받은 HP의 멕 휘트먼 CEO는 24일(현지시간)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해외에 보관하고 있는 수익금을 미국으로 가져오면, 이 금액을 투자나 주식 환매 등에 사용할 수 있다”며 “트럼프 당선인의 법인세율 인하 정책은 HP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정책은 미국을 조세에 있어서 경쟁력 있는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당선인의 이 같은 제안에 중국 내 여론은 좋지 않다. 중국이 보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일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Global Times)는 지난 13일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시작하면 애플이나 미국 자동차 기업은 더 이상 중국에서 그들의 제품을 판매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