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29)씨는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 ‘제주 극조생귤’ 1박스를 샀다가 낭패를 봤다. 10kg에 1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혹해 샀는데, 택배로 배달된 귤을 본 이씨는 ‘본전’ 생각에 입맛을 다셔야 했다. 귤 표면은 상처로 가득했고, 금귤만 한 작은 크기의 귤은 껍질 까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속았다는 기분에 인터넷에 사진을 찍어 올렸더니 “저런 귤은 판매용이 아니다”, “팔면 안 되는 ‘똥파치’ 귤”이라는 제주도 주민들의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지난달 25일 한 유명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구입한 제주 극조생 감귤 랜덤과 10kg 모습. 판매자는 강제착색·후숙을 하지 않은 싱싱한 감귤이라고 광고했지만, 이를 실제로 본 제주 농민들은 "팔아선 안 되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제철을 맞아 온라인 쇼핑으로 제주산 귤을 사서 먹는 소비자들이 많다. 그러나 일부 판매자들이 싼 가격을 미끼로 판매가 금지된 저품질 귤, 이른바 '파치귤'을 판매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파치'는 깨지거나 흠이 나서 못 쓰게 된 물건을 뜻하는 말이다.

제주도는 제주산 귤의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감귤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에 판매할 수 없는 상품 기준을 만들었다. 지름 49~70mm 기준에 들지 않는 너무 작거나 큰 귤은 파치이다. 골프공처럼 작은 소과(小果)는 먹기 불편하고, 너무 큰 대과(大果)는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껍질이 들뜬 귤이나 껍질에 상처가 많고 지저분한 결점과(缺點果) 역시 판매할 수 없는 상품으로 분류된다.

제주도는 파치귤 유통·판매 행위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제주산 귤이 시중에 싸게 유통되면 귤 전체 가격이 내려가 농가 수익이 줄어든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인터넷 직거래 사이트나 온라인 쇼핑몰에는 제주에서 생산된 파치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소규모 택배 배송으로 유통되는 물량은 단속반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파치귤을 "농약을 적게 써 외관이 못생긴 귤"이라고 광고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 올라온 제주 감귤 구매 후기. 500원 동전과 유사한 크기의 파치귤을 구매했다. 이 같은 판매 후기는 쇼핑몰이나 직거래 장터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시청 소속 민간인감귤유통지도원 이모(48)씨는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 사진을 보면 비상품 귤을 산 경우가 많아 답답하다"며 "조례상 비상품 등급 귤은 가공용으로만 팔 수 있고, 가격도 10㎏에 1500원밖에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파치귤 10㎏을 1만원 정도에 산 소비자는 '알뜰 쇼핑'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10배 가까운 '바가지'를 썼다는 뜻이다.

이씨는 이어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10㎏에 1만원 내외의 귤, '크기는 랜덤' '못생기고 작지만 맛있는 귤' 등의 문구를 사용하는 귤의 경우 비상품 귤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품질이 떨어진 귤을 팔아 소비자를 실망시킬수록 손해를 보는 건 제주 농가"라고 주장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치귤을 파는 판매자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파치귤에 속지 않는 법'을 알리는 글이 온라인에 올라오기도 한다. 한 네티즌이 만든 '파치귤 알아보기' 사진은 트위터에서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유했다.

한 네티즌이 "돈 주고 안 사는 파치귤을 비싸게 사지 말라"며 만든 이미지 파일은 트위터에서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유했다.


그러나 일부 귤 재배 농가에서는 파치 상품이 대량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행 '감귤 조례'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주에서 귤 농사를 짓는 오모(69)씨는 "충분히 팔 수 있는 상품까지 크기가 조금 작다는 이유로 파치귤로 분류한다"면서 "파치귤도 맛에는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농가 소득을 위해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일부 판매자가 조례상 금지된 비상품 감귤을 유통하는 게 사실"이라며 "상품 선별 과정부터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온라인 판매 채널이 워낙 다양해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맛있는 제주산 귤을 먹으려면 시세보다 30~40% 이상 저렴한 상품은 피하고, 정식 품질검사를 통과한 귤을 사는 것이 좋다"면서 "품질검사 도장이 찍힌 상품인데도 품질이 떨어지는 귤이 여러 개 있을 경우 제주도로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