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욱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얼마 전 책을 한 권 집필했다. '나쁜 기업이 되라'라는 제목으로 상식보다는 틀을 깨는 기업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부연하자면 예측된 수요, 예측 가능한 고객, 뻔한 서비스로는 도무지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 무조건 최선을 다하고 고객에게 맞추며 착한 가격에 제공하는 착한 기업은 고객의 흥미를 끌지 못하며 고객은 불편하더라도 매력적이고 독특한 기업에 끌린다. 그래서 이 독특한 기업을 요즘 젊은이들이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에 대입해 '나쁜 기업'으로 명명한 것이다.

제목만 봐서는 '대한민국 좋은기업' 심의위원으로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기에, 주변 지인들에게 '좋은 기업이 되라는 거냐, 나쁜 기업이 되라는 거냐'란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좋은 기업'이 되기 위한 단계 혹은 방법론으로서 '나쁜 기업'이 되는 전략을 정리해놓은 것이니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서론이 길었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좋은 기업'이 되기 위한 경영 전략이나 비전에 대한 고민은 무수히 많았다. 반면 기업이 당연히 지켜야 하는 사회 기본적 가치(안전, 생태, 도덕, 준법)에 대한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등한시돼왔다. 하지만 기업이 이러한 사회 기본적 가치를 뿌리내리지 않은 채 운영된다면 기업의 비전 및 전략은 모두 모래 위에 지은 성이나 다름없다. 가습기 살균제 파문으로 국민의 공분을 산 옥시가 그 예다.

그에 반해 귀뚜라미 보일러의 예를 살펴보자. 귀뚜라미는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라 여겨졌던 20년 전부터 이미 철저한 지진 감지 시스템을 구축했고 20년이 지난 지금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만약 귀뚜라미가 원가 절감을 위해 안전장치 구축에 소홀했다면 지난 강진 발생 시 국민의 불편은 물론이고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제품을 많이 생산해서 파는 수익보다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이라는 기본 가치에 더 큰 방점을 찍었기에 귀뚜라미는 많은 국민의 신뢰를 얻고 좋은 기업으로 선정될 수 있었다.

귀뚜라미를 비롯해 이번 '2016 대한민국 좋은기업'에 선정된 기업들을 살펴보면 고객만족, 사회공헌, 인재존중, 창조경영, 리더십 등의 항목에서 고루 좋은 점수를 얻었고 무엇보다 사회 기본적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국가 리더십의 상실, 기간산업의 구조조정, 북핵 위협, 예상 밖의 미국 대선 결과 등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대내외적으로 많은 악재를 맞닥뜨렸고 국민은 지쳐 있다. 우리가 지금껏 배워왔던 상식과 기본이 부정되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지켜야 할 것을 충실히 지켜내며 본연의 자리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좋은 기업'이 많이 나타나야 한다.

새로운 혁신, 전략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이 사회 기본적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고, 나아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