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8일 구글이 요청한 정밀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8월 결정 하기로 했다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60일 미뤘지만 결국은 기존 방침을 유지했다. 정부는 “미 대선 이후 대미 통상 압력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구글이 주요 군사시설에 대한 삭제 혹은 블러(흐리게 함) 처리를 거부해 안보 위험이 커질 것을 우려해 불허 했다”고 밝혔다.

18일 국토교통부와 미래창조과학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정보원 등 8개 부처는 경기도 수원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오전 10시부터 2시간 가까이 ‘지도 국외 반출 협의회 회의’를 열고 "구글이 요청한 상세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구글 맵 홈페이지(maps.google.com)에서 국토리지정보원을 검색하면 나오는 화면.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 건물만 표시되고 골목길이나 작은 상가 등 세밀한 지도 정보까지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최병남 국토지리정보원장은 “구글의 지도반출 요청은 남북이 대치하는 안보 여건에서 안보 위험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어 구글 위성영상에 대한 보안처리 등 안보 우려 해소를 위한 보완방안을 제시했지만 구글 측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구글은 지난 6월 국토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 5000대1 축척의 국내 지도 데이터를 해외에 있는 구글 본사 데이터센터에 저장하는 것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지난 2007년부터 정부에 일관되게 요청해왔다.

구글은 한국의 구글 맵 관련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지도 데이터 반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5000대1 지도를 SK텔레콤으로부터 일부 제공 받아 구글 맵 서비스를 하는 중인데 정확도가 떨어지고 지역별 도로·상점 정보도 없어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해외 반출이 가능한 지도는 축척 2만5000대1 이하이고 국토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부는 국내 주요 군사기지가 외부에 노출되선 안된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정밀한 지도의 해외 반출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당초 8월 24일 반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협의회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린데다 구글 측에서 추가 협의를 요청해 한차례 연기했고 이날 최종 결론을 냈다.

외교부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에 비해 더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다는 의견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통상 정책을 추진할 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최병남 원장은 "이 협의체는 당초 안보와 관련된 논의를 주로 하도록 돼 있고 통상 압력은 아직 구체적으로 제기된 상황이 아니어서 (회의에서) 깊이 논의하지는 않았다"면서 “향후 구글 측의 입장 변화 등으로 재신청이 있을 경우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안보 불확실성 고조, 세금 회피 논란 등을 감안해 구글의 지도 외부반출 요구를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① 주요 군사시설 외부 노출 우려…안보 불확실성 커져

정부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구글에 상세 지도 데이터를 내주는 것이 안보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구글이 2007년부터 정부에 꾸준히 지도 해외반출을 요구했지만 번번히 불허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구글이 반출을 요청한 지도 데이터는 5000대1 수준의 상세 지도로 도심 지역 골목길까지 자세히 표시된다. 이 지도에 국가 중요 안보 시설은 삭제돼 있지만, 구글의 인공위성 사진 서비스인 '구글 어스'와 결합하면 삭제된 정보를 손쉽게 복구할 수 있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업체들은 군사·안보 시설에 대한 정보를 삭제해놓고 지도 서비스를 하고 있다. 정부는 구글에 주요 군사시설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구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순실 사건으로 정국이 혼란한 상황에서 지도 반출을 허용하면 국민 반발이 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최근 한일 양국이 군사정보보호협정에 가서명한 것을 두고 야당에서는 "벼락치기로 민감한 외교 안보 현안을 처리했다"면서 한민국 국방부 장관의 해임 건의나 탄핵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② 세금 한푼 안내면서 데이터만 요구…징계성 조치

국내에서 1조원 넘는 매출을 올리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구글에 대해 정부가 징계성 조치를 내린 측면도 있다. 구글은 현재 국내에 데이터센터와 서버를 운영하지 않는데, 현행 세법상 한국에서 매출을 올려도 사업 설비가 해외에 있으면 법인세를 징수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미국 애플과 중국 바이두의 경우 한국에 서버를 두고 있어 정부에 지도 해외 반출을 요청하지 않아도 된다. 구글도 한국에 서버만 두면 해결될 일인데 해외 반출 요청과 같은 까다로운 절차를 선택한 것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구글에 지도 반출을 허용하면 한국에 서버를 둔 외국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③ 구글의 무리한 주장…왜 한국만 정밀 지도 요구하나

다른 나라 사례와 비교할 때 구글이 한국에만 무리한 주장을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네이버에 따르면, 구글은 현재 여러 국가에서 2만5000분의1 축척보다 질 낮은 지도로도 자동차 길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도 데이터의 정밀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구글 지도 제작 도구’를 통해 길 찾기 서비스를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네이버측 주장이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은 "미국과 일본에서 구글이 서비스 중인 지도의 축척은 2만5000분대1, 중국은 이보다 훨씬 낮은 5만분의1"이라며 "왜 우리나라에만 5000대1 정밀 지도를 요구하느냐"고 지적했다.

◆ 통상 마찰·국내 IT업체의 2% 부족한 지도서비스는 해결과제

정부가 구글의 지도 반출 요청을 최종적으로 불허하면서 미국과의 통상 마찰 가능성은 해결과제로 남게 됐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미국 의회에 제출한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지도정부에 대한 미국 기업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이 ‘전자상거래 규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미국과의 통상 마찰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산업부와 외교부 등은 자국 이익을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자고 공약한 트럼프가 지도 반출을 거부할 경우 통상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구글 맵에 비해 부족한 국내 IT 업체들의 지도 서비스도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IT업체들이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는 한국어로만 제공 돼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하다. 국내 기업들이 수요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외국어 서비스를 도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구글 맵은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