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기업 간 대형 인수합병(M&A) 광풍이 멈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인텔이나 퀄컴보다도 왕성하게 M&A 쇼핑을 진행 중인 기업이 있다. 아날로그 반도체 분야 최강자 중 하나로 꼽히는 아나로그디바이스(ADI)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ADI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반도체 기업 중 하나다. 미국 매사추세츠에 본사를 둔 이 기업은 온도, 중력, 사람의 움직임 등 자연 요소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아날로그 디지털 컨버터(ADC)' 칩을 각종 다양한 센서 기술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7월에는 148억 달러(약 17조원)에 리니어(linear)를 인수하며 사물인터넷(IoT) 시대의 새로운 강자로 주목받고 있다.

양재훈 한국아나로그디바이스 대표이사.

업종과 무관하게 모든 IT 기업이 IoT 시장에 발을 뻗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ADI가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ADI의 센서 기술이 사실상 IoT 분야의 '최전선'에 위치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기존 웨어러블 기기에 탑재되는 심박수, 모션, 중력 센서 등을 개발한 ADI는 최근 물질·성분 분석, 지능형 IoT 플랫폼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해로 3년째 한국ADI를 이끌고 있는 양재훈 대표를 18일 만나 ADI의 IoT 시장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양재훈 대표는 "진정한 의미의 IoT는 궁극적으로 모든 디바이스가 다양한 센서 기능을 갖고 서로 연결되는 커넥티비티(Connectivity)"며 "ADI가 만드는 센서 제품이 PC, 서버, 모바일 중심으로 꾸려진 IT 생태계의 일부 부품이었다면 IoT 시대에는 중심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말했다.

◆ 멈추지 않는 M&A 쇼핑… “IoT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

ADI는 올해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많은 M&A를 단행한 기업 중 하나다. 지난 4월에는 스위스의 스냅센서(SNAP Sensor)를 인수하며 광학, 이미지 센서 기술력을 강화했고 7월에는 올해 반도체 '빅딜' 중 하나인 리니어 테크놀로지와의 M&A도 성공시키며 반도체기업 중 매출 기준 세계 15위 기업으로 뛰어올랐다. 리니어는 전압제어용 반도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보안 무선 통신 솔루션 기업은 사이프리스, 이더넷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이노베이직도 사들였다.

양재훈 대표는 “사물인터넷 생태계의 제일 앞 부분에 있는 엣지(edge)에서 더욱 지능적인 시스템을 갖춰야만 IoT 생태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며 “ADI의 센서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클라우드로 옮기고 정보를 분석해 다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구조가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센서와 함께 정보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알고리즘으로 효율적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 대표는 “ADI는 전체 매출의 19%를 연구개발에 쏟아붓고 있고 전체 직원의 45%가 엔지니어일 정도로 기술 개발에 특화한 기업이지만 기존에 강점을 갖고 있는 센서뿐만 아니라 정보를 직접 분석하고 프로세싱하는 영역으로 IoT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회사를 인수할 것이고 더 많은 회사와 기술 파트너십을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화하는 첨단 센서…“가전으로 물질·성분 분석하는 시대 왔다”

양재훈 한국아나로그디바이스 대표이사.

ADI의 전문 영역인 센서 기술도 빠른 속도로 진화하며 새로운 시장 개척을 노리고 있다. 특히 소형 센서로 물질이나 성분을 분석하는 ADI의 신기술이 조만간 소비자 시장에서도 상용화할 것으로 보인다. ADI는 올해 2월부터 미국의 솔루션 기업인 컨슈머 피직스(Consumer Physics)와 함께 식품, 식물, 의약품, 화학물질, 인체 등 다양한 액체와 고체 물질을 분석할 수 있도록 센서에서 클라우드로 정보를 전달하는 개인 및 산업 IoT 플랫폼을 공동 개발 중이다.

양 대표는 “소비자 가전 제품 분야에서도 더욱 다양한 기술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물질 센서의 경우 컨슈머 피직스와의 협업을 통해 함께 개발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소비자 입장에서 편리하게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냉장고나 전자레인지 등의 가전 제품에 적용해 과일, 음식 등이 어떤 상태인지, 칼로리가 어떻게 되는 지 등을 판단할 수 있게 적용하는 것도 한 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도 ADI의 주력 영역 중 하나다. 양 대표는 “자동차용 반도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어놨고 앞으로 3년에서 5년 사이에 큰 결실을 볼 것으로 보인다”며 “자율주행이나 자율주차 등 자동차 기술에는 첨단 센서가 아주 많이 필요하고 ADI는 레이더, 라이다, 카메라 등 주요 제품을 모두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ADI 대표를 맡은 이후 3년 동안 회사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반도체 업계 전체적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시기”라며 “이제 ADI는 널리 사용되는 센서 부품을 만드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고객들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통해 솔루션 제공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다음 50년의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