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이 미래 인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섣불리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IBS는 젊은 과학자 양성에 노력하고 대학과의 적극적인 협업 기반을 구축하며 인류를 위한 장기 비전을 고민하면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기간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17일 대전광역시 ICC호텔과 롯데시티호텔에서 열린 기초과학연구원(IBS) 개원 5주년 기념 연례회의에서 ‘한국 기초과학 발전을 위한 IBS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된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세계 유명 연구기관 전문가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초과학 종합연구소인 IBS에 이같이 조언했다.

IBS 개원 5주년 기념 연례회의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세계 유명 연구기관 전문가들.

이날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박범순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와 마츠모토 히로시(Hiroshi Matsumoto)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이사장, 필립 코도네(Philippe Codognet)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동경사무소장, 조지 사와츠키(George Sawatzky)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 디트마 베스트베버(Dietmar Vestweber)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분자의학연구소장이다.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적인 연구기관의 전문가들로, 이들은 한국이 기초과학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개원 5주년을 맞은 IBS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기초과학 발전 속도는 원래 느려...초창기 인터넷도 산업계 관심 못받아

교토대학 총장을 지내다 작년에 일본 이화학연구소에 합류한 마츠모토 이화학연구소 이사장(사진)은 "사회의 변화 속도에 비하면 기초과학의 발전 속도는 무척 느리다"며 "하지만 결국 인류의 당면 문제인 인구 문제, 지구 온난화, 에너지, 자원 부족 등을 해결하는 것은 기초과학"이라고 말했다. 기초과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5~10년만 내다보지 말고 인류 전체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등 장기적인 비전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다수 배출됐지만 이렇다 할 혁신은 없었는데, 이는 큰 비전이 없기 때문”이라며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떤 비전을 갖고 과학자들이 혁신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한 필립 코도네 소장(사진)은 "1980년대 처음 인터넷 기술이 나왔을 때만 해도 일반 대중들과 산업계의 관심을 못받았다"며 "당시만 해도 전자상거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지 아무도 예상못했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의 성과로 개발된 인터넷이 인류의 삶의 행태를 바꾼 것처럼 10년 뒤 기초과학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 젊은 과학자가 가고 싶어하는 연구기관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젊은 과학자 양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젊은 과학자들이 가고 싶어하는 연구기관을 만들고 이들을 적극 지원해야 과학기술 기반의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와츠키 교수(사진)는 "매력적인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젊은 과학자들이 가고 싶은 연구기관을 만들면 된다"며 "이를 위해서는 연구기관 디렉터의 역할이 중요하며 최고 인재만을 채용한다는 평판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베스베버 소장은 “막스플랑크연구소의 경우 독일 출신은 35%에 불과하다”며 “대학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호기심 많고 누구도 하지 않은 연구를 하려는 대학원생을 발굴해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적절한 인재를 확보하면 이들에게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야 장기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츠모토 이사장은 “학제간의 장벽을 없애기 위해 과학자와 의대 교수, 다른 분야 연구자 등이 머리를 맞대 대화해야 한다”며 “생물학, 물리학, 사회학, 철학, 인문학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특허·스타트업도 기초과학의 산물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허와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주는 스타트업도 결국 기초과학에 나온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코도네 소장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은 2차 대전중인 1939년에 설립돼 1945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초과학 연구를 시작했다”며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 2001년까지 1000개의 스타트업과 4000개의 특허가 출원됐다”고 밝혔다. 기초과학이 응용산업으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결국 혁신은 기초과학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다.

박범순 KAIST 교수(사진)는 "한국의 개인 연구자에게는 연구의 자율성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일본, 프랑스, 독일처럼 기초과학 연구기관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미래 사회를 디자인하고 과학계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BS는 2011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과학벨트 입지 선정에 착수해 2011년 5월 과학벨트 거점지구 입지로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선정한다고 발표하며 개원했다. IBS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과학벨트 조성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설립 논의가 시작됐다. 행정중심 복합도시와 대덕연구단지, 오송바이오산업단지를 광역경제권으로 묶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과 지역간 갈등으로 미뤄지다 2011년 과학벨트 입지가 선정되며 논란이 일단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