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건물 5층에 있는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이곳은 65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250여명 젊은이의 일터다. 엘리베이터 앞 강의실에서는 예비 창업자 30여명이 온라인 쇼핑몰 창업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인근 회의실에서는 한 스타트업 직원 4명이 회의 중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서울시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 예산 삭감'에 대해 우려를 쏟아냈다. 앱 개발 스타트업의 정모 대표는 "센터가 없어지면 입주 스타트업도 쫓겨날 텐데 당장 사무실 얻을 돈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창업하라고 등 떠밀다가 이제는 우리를 '창조경제'의 특혜받은 나쁜 사람 취급한다"고 했다.

1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입구(위 사진). 지난 10일 서울시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 관련 운영 예산 20억원을 백지화하면서 그동안 정부·민간 공동으로 추진해왔던 창업 생태계 육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아래는 당초 나주 혁신도시에 들어서기로 한 전남 창조경제혁신센터의 내부 모습. 최근 개소식이 예정돼 있었지만 최순실 사태로 인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내부 공사 역시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날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경기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는 예정에 없던 입주 기업 간담회가 열렸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입주 기업들이 동요하는지를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들이 점검하러 나온 것이다. 간담회에 참가한 벤처인들은 "(정부 관계자로부터) 벤처 지원은 계속될 테니 동요하지 말고 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역점 사업인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출범한 지 1년 6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정부에 대한 반감이 거세지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예산을 삭감하고 나섰다. 부산과 경북 센터에서는 연봉 1억원이 넘는 센터장 공모에 지원자가 너무 적어 재공모를 하는 일까지 생겼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붕괴 불안감이 센터 지원을 받는 1440여 스타트업의 직원들을 덮치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예산 삭감 잇따라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총 600억~700억원 정도의 운영·사업비를 약 6대4로 나눠 지원하는 형태다. 하지만 서울시가 지난 10일 서울 센터 내년 예산 20억원을 전액 삭감한 데 이어 광주시와 울산시도 내년 예산을 올해의 절반 수준으로 삭감했다. 작년 수준의 예산안을 통과한 지자체들도 시·도 의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대폭 삭감될 가능성이 높다.

중앙정부 예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미래부는 국회에 472억원의 예산안을 제출했지만 야당이 다수인 국회에서 삭감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스타트업을 지원할 자금은 고사하고 현재로선 센터 운영비를 걱정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전체 예산이 360억원 미만이면 센터 직원들 월급과 건물 임차료만 겨우 충당하고 스타트업 지원 사업은 '올 스톱'될 것이란 설명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원해온 대기업들도 발을 빼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원해온 대기업 18곳 중 2~3곳이 경영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운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의사를 미래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부 관계자는 "2곳 정도가 조만간 센터 운영에서 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과 경북 센터는 후임 센터장 선정에 애를 먹고 있다. 센터장 연봉이 1억원이 넘는데도 현직 센터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공모에 지원하지 않아 재공모에 들어간 상태다. 인천 창조경제혁신센터에도 단 2명만 지원했다. 수도권 지역 센터의 한 관계자는 "괜히 센터장 이력을 만들었다가 다음 정권 5년간 고생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했다.

"'창조경제' 간판은 내리더라도 창업 정책은 이어져야"

벤처 업계에서는 "간판을 바꾸더라도 벤처·스타트업 육성은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년여의 짧은 기간 1440여 스타트업의 창업을 지원하고 3706억원의 외부 투자를 이끌어낸 창업 정책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근 "박근혜 정부의 벤처 창업 지원은 그래도 잘한 일"이라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더 발전시켜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광현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센터장은 "대기업 경제 집중을 완화하고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스타트업"이라며 "중국의 무서운 창업 열기를 생각하면 한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는데, 창업 열기가 꺾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도 "10년 후를 위해 기술벤처라는 씨앗을 연간 100개, 1000개씩 계속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