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독일 자동차 부품회사인 ZF프리드리히샤펀은 124억달러(14조5000억원)를 들여 미국 자동차 부품회사 TRW을 인수했다. 이 M&A(인수·합병)는 자동차 부품 산업에서 사상 최대 규모다. ZF는 단숨에 일본 덴소를 제치고 독일 보쉬에 이어 세계 2위 자동차 부품 업체가 됐다.

이에 질세라 일본 덴소도 최근 자동차 내비게이션 기업 후지쓰텐 인수에 나서고 있다. 후지쓰텐은 차량 간격이나 사람의 존재를 파악하는 '밀리파 레이더'에 강점을 갖고 있다. 덴소의 가토 요시후미 상무는 "후지쓰텐과 기술력이 합쳐지면 자율주행차용 기술 개발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새 2배 증가…M&A 태풍이 불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계

자동차 부품업계의 M&A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와 커넥티드카(인터넷으로 연결된 첨단 자동차) 중심으로 재편될 미래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완성차 회사보다 부품회사들이 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PwC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산업 내 부품업체 간 총 인수·합병 규모는 329억달러(38조4000억원)였다. 2014년의 168억달러(19조6000억원)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독일 자동차 부품회사인 ZF프리드리히샤펀은 지난해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 TRW을 14조5000억원에 인수해 세계 2위 자동차 부품 업체가 됐다. 사진은 올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관람객들이 ZF의 첨단제품을 체험하고 있는 모습.

반면 자동차 완성차업체의 M&A 규모는 57억달러(6조7000억원)로 2014년의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일본과 독일, 영국의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센서나 카메라, 레이더 등 자율주행차 실용화를 위한 선도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M&A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 콘티넨털은 첨단운전자보조장치(ADAS) 관련 센서 기술 확보를 위해 2011년 마그나의 레이더 사업부, 2013년 ASL 비전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레이더나 데이터 해석에 강점을 가진 콘티넨털은 이런 인수를 통해 센서 기술도 받아들여 자율주행의 복합 시스템 구축을 하겠다는 전략이다. 영국의 델파이오토모티브도 지난 8월 자율주행 때 '눈' 역할을 하는 카메라에 강점을 가진 이스라엘 자율주행차 부품업체 모빌아이와 제휴했다.

급변하는 자동차 부품업계…글로벌 강자만 살아남는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M&A에 적극적인 데는 기술 확보와 효율적 연구개발이란 일석이조의 노림수가 있다.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관련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함에 따라 부품업체들은 좀 더 많은 연구개발(R&D)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2005년 700억달러 수준이던 자동차산업 R&D 투자 규모는 지난해 1093억달러로 급증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신기술 도입에 따른 연구개발 비용 증가는 소규모 업체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전기차 부품회사들이 중국 내 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을 사들이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부품업계 M&A 급팽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 자동차 부품업체인 완샹첸차오(萬向錢潮)는 2012년 미국 배터리 생산업체인 A123를 사들인 데 이어 2014년에는 미 고급 하이브리드카 제조업체 피스커를 인수했다. 또 중국의 톈치(天齊)리튬 주식회사는 최근 미국 회사로부터 세계 최대 리튬 생산업체인 SQM 지분 2%를 2억960만달러에 사들였고 7%의 지분을 추가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여기에 자동차가 점점 첨단 전자제품화되는 추세에 맞춰 정통 전자회사까지 자동차산업에 속속 뛰어드는 등 자동차 부품업계의 M&A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미국의 전장(電裝·자동차 전자장비) 전문기업인 하만을 9조원대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일본 전자업체 파나소닉은 올해 초 영상 인식 기술을 보유한 스페인 피코사 지분 49%를 인수해 눈길을 끌었다.

이남석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자동차회사들과 부품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순식간에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