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 제조를 위해 필요한 브로칭머신(절삭가공용 기계)을 만드는 중소기업 한국브로치와 이 장비로 부품을 만들어 국내외 완성차 업체에 제공하는 디아이씨는 지난해 동반성장위원회가 시행하는 ‘원가절감형 공동사업’에 참여했다. 두 회사는 이 사업을 통해 연구개발비 지원을 받고, 독자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두 회사가 얻게 된 이익은 매년 5000억원. 원가의 35%에 해당하는 금액이 절감된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동반성장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도모하는 조직인 동반성장위원회에 대기업 지원액을 크게 줄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가 무관심해진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경기가 좋지 않아 동반성장위원회에 대한 기업의 출연이 줄어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보다 강력한 집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동반성장 투자재원 출연금 목표대비 33.4%에 불과

14일 국회예산정책처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동반성장위원회를 운영하는 중소기업협력재단(이하 재단)에 대한 대기업 등의 출연 실적은 지난 6월말 기준 600억원에 불과했다. 재단이 올해 동반성장 관련 사업계획을 잡으면서 목표로 했던 1795억원의 33.4%에 불과한 수치다.

재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 인력, 판로 등 협력사업을 추진해 ‘동반성장 문화’를 확산하고 공정거래관계 조성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0년 산하에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를 설립했다. 초대 정운찬 위원장, 2대 유장희 위원장에 이어 현재 안충영 위원장이 이끌고 있다.

동반위는 매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실태를 평가해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이 지수는 133개 대기업의 상생활동을 매년 평가하고 등급을 나눠 중소기업지원에 대한 경쟁을 도모하는 데 쓰인다.

동반위는 특히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인력개발 ▲생산성향상(성과공유제) ▲해외시장 진출 ▲온실가스 감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중소기업계 현장의 의견을 모아 과제를 선정하고, 과제별로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은 매년 대기업을 중심으로 공기업과 중견기업이 출연하는 자금으로 진행된다. 출연금을 내는 기업에는 출연금의 7%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과 함께 동반성장지수 산정시 가점부여, 공공기관 중소기업 동반성장 지원 평가시 가점부여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대기업 등은 지난해까지 매년 출연금을 증액했다. 지난 2014년에는 1299억원, 2015년에는 1424억원이 각각 출연금으로 들어왔다. 그러던 것이 올 들어 크게 쪼그라든 것이다. 당초 정부는 2019년까지 누적 출연금 1조원을 목표로 했지만 이 역시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연말까지 출연실적이 1281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으로 투자재원 수입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동반위 제공

◆ 정권 바뀌면 사라지는 정책… “좋은 것은 계승해야”

일각에서는 동반성장에 대한 정부와 대기업의 관심이 줄어든 것이 이전 정권의 정책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 2010년 이명박정권에서 출범했다. 현 정권의 정책 결정자들이 동반성장위원회에 관심을 덜 갖다보니 대기업도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위원장 임기가 끝난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정 공백이 생기면서 후임자 인선이 언제 될 지도 미지수인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동반성장지수 발표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는 취지가 매우 좋은 활동”이라며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이 시들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정부는 동반성장 정책이 헛도는 것이 경기 탓이라고 반박한다. 산업부 기업정책과 관계자는 “대기업의 출연이 줄어든 것은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다는 방증”이라며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에 기업들이 출연금을 더 많이 내는 경향이 있어 최종적으로 얼마나 걷힐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 투자재원의 사용목적 제한을 폐지하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조만간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라면서 “향후 동반위의 투자재원 마련이 보다 용이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정부와도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중소기업과의 자체적인 상생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어 출연금이 줄어드는 것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동반위의 활동은 중소기업협력재단에서 운영하는 사업의 일부일 뿐”이라며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의 상생노력을 따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는 올해 30대 그룹이 협력사에 1조8452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의 1조7406억원보다 6.0%, 2011년 이후부터 연평균 3.8% 증가한 수치라는 게 전경련의 주장이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대·중소기업 상생발전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앞으로도 동반위의 취지를 잘 살려 정권과 관계없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과 소통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