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일자리를 갖는 ‘완전 고용’은 과거에나 가능했던 일입니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미래가 머지 않은 만큼, 우리는 이를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인간에게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 주는 것은 물론, 빈곤을 만들어내고 강화시키는 우리 사회를 치료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해결책입니다.”

사라트 다발라 박사 제공

기본소득인도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라트 다발라(Sarath Davala·사진) 박사는 조선비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구시대적인 정치경제적 사고에서 벗어나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본소득이란 정부가 국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일정 금액을 매달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기본소득에 대해 학계에서는 수혜 대상의 범위, 효율성 여부, 재원 마련 방안 등 여러 부문에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다발라 박사가 이처럼 기본소득의 효과에 대해 강하게 확신하는 것은 그가 지난 2011년 인도에서 실시된 기본소득 실험에서 연구 책임자로 활동하며 기본소득의 효과를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당시 자영업여성연합(Self Employed Women’s Association·SEWA)은 인도 마디야프라데시(MadhyaPradesh) 주에서 성인 1인당 200루피(약 3300원), 어린이 1인당 100루피(약 1600원)를 매달 지급했다. 다음 해에는 각각 300루피(약 5000원), 150루피(2500원)로 지급액을 올랐다.

성별, 연령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현금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한 결과 의미 있는 변화들이 있었다. 어린이들의 영양실조가 크게 개선되고 학교 출석률이 높아졌다. 기본소득을 받은 가정 중 21%의 소득 수준이 향상됐다. 일반 가정 중 소득 수준이 나아진 곳은 9%에 불과했다.

기본소득이라는 제도가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는 이유는 기본소득 지급에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정부 부채 비율이 평균 115%에 달하는 상황이다보니 선진국도 기본소득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다발라 박사 등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재원 마련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다발라 박사는 “미래엔 생산과 서비스 모두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며, 결국 인간은 시간제 일자리로만 고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때 로봇으로부터 창출된 수익을 이용하면,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본소득의 재원 원천을 국가와 주(州) 단위에서만 조달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본소득이 ‘소득 불평등’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병폐(病弊)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기본소득 실험에 참여한 인도 주민들이 기본소득을 받아가는 모습.

◆ 기본소득 실험해보니… “건강 좋아지고 소득 높아져”

-인도에서 실시된 기본소득 실험에 대해 설명해 달라.

“SEWA는 2011년 6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유니세프의 지원을 받아 인도 마디야프라데시 주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했다.

첫 번째 실험에선 8개 마을 주민들을 기본소득 지급 대상으로 선정했다. 성인 1인당 200루피(약 3300원), 어린이 1인당 100루피(약 1600원)을 매달 현금으로 지급했다. 그 다음 해에는 각각 300루피(약 5000원), 150루피(약 2500원)로 인상됐다.

두 번째 실험은 같은 주에 위치한 부족 마을에서 진행됐다. 부족민들은 인도 내에서도 극빈층으로 꼽힌다. 이들은 성인 1인당 300루피, 어린이 1인당 150루피를 받았다.

실험 결과, 각 나이에 맞는 정상 체중을 가진 어린이는 실험 전 39%에서 실험 후 58%로 크게 늘었다. 3개월 내 질병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일반 마을에선 70%로 나타났지만,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 중에선 58%로 나타났다. 일반 가정 중 9%만이 소득 수준이 나아진 반면, 기본소득을 받은 가정 중에선 21%가 소득 수준이 향상됐다.”

-실험 진행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나.

“많은 도전들이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 프로젝트가 진짜임을 확인시켜줘야 했다. 사람들은 적은 금액이지만 조건 없이, 공짜로 돈을 준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재산을 뺏어갈 수도 있다고 의심했다. 믿음을 얻는 데 꽤 오랜 기간이 걸렸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왜 그들이 돈을 받아야 하는지 궁금해 했다.”

-인도의 기본소득 실험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결론을 얻었다. 적은 금액일지라도,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주어진다면 기본소득은 빈곤으로부터 해방과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인도의 기본소득 실험은 인간이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고, 또 그 선택을 하려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복지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서, 소규모의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된 인도의 기본소득 실험은 기본소득이 전국적으로 도입됐을 때의 돌발상황까지는 반영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어떤 맥락에서 보면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도의 기본소득 실험이 어떤 보편적 측면을 지니고 있는지, 또 어떤 특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특정한 나라에서 실시된 의학적 연구가 다른 나라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연구는 보편적 측면과 함께 그 나라의 특성, 인종적 차이 등 다양한 측면을 염두에 두고 실시된다. 기본소득 실험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진행된다.”

사라트 다발라(오른쪽) 박사가 지난 7월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에 참석했을 때 모습.

◆ “로봇으로 창출한 소득으로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 지급 가능”

-현재 복지 정책만으로 빈곤 퇴치가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각 국가들이 실시하고 있는 복지 제도와 빈곤 퇴치 정책은 그 효과가 의도했던 만큼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각종 지원 제도나 보조금마다 조건, 제한 등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 조건들을 충족하기 위해선 공무원들이 수혜 대상을 일일이 선정해야 하고, 또 그 과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이 재량권은 공무원들의 부패를 조장하고, 빈곤 퇴치 효과를 감소시킨다. 이같은 수직적 구조에서는 인간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 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실험에서 기본소득의 보편적 적용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해도, 여전히 ‘재원 마련’이라는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다.

“먼저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완벽한 대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달라. 우리는 개발도상국들의 현재 복지 시스템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을 살펴봤다. 그 결과, 현재 복지 시스템은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낭비되는 재원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본을 예로 들면, 도쿄에만 약 5000명의 노숙자가 있다. 일본 전국으로 그 범위를 넓혀보면 노숙자는 2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어딘가에 속하는 것 보단 거리에서 자는 것을 더 선호한다.이것은 일본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앞으로는 로봇이 생산과 서비스를 대체할 것이다. 노동자 대부분은 시간제 일자리만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기로만 생각하지 말고 이용해야 한다. 로봇으로부터 창출된 소득을 이용하면, 국가는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

초국가적 기업이 전세계인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국가, 주(州) 단위에서만 볼 필요는 없다.”

-빈곤 퇴치만을 위해서라면, 기본소득과 같이 실현되기 어려운 정책이 아닌 다른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빠를 수 있다.

“빈곤은 자본주의에 의해 생성되고, 더욱 강화된다.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를 자연스럽게 치료할 수 있는 해결책인 것은 맞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단순히 빈곤 퇴치나 복지 정책으로의 성격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 수익으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감싸안고,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적 측면에 저항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기본소득은 유급 노동의 대체재가 아니다. 인간의 모든 욕구를 충족할 수도 없다. 다만, 지금은 누군가가 사회에서 실패했을 때 완전히 나락으로 쉽게 떨어질 수 있지만, 기본소득은 그 누가 실패해도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장한다.

또한 기본소득은 전업주부의 집안일 등 무급 노동까지도 보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기본소득은 소득 없이 일하고 있는 모두에게 경제적 시민권을 제공한다. 개인이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세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지급받은 인도 어린이가 이를 활용해 예방접종을 맞는 모습.

◆ 기본소득이 근로의욕 꺽지 않아… “청년배당 시행결과에 주목”

-기본소득 제도의 한계는 없을까.

“기본소득은 아직 실험 단계이기 때문에, 지금 한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기본소득의 철학적, 실용적 측면을 따져보는 논쟁들은 모두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다만 현대 기본소득의 이론을 체계화한 필립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 교수에 따르면, 반대론자들의 주된 근거는 ‘어떻게 돈을 공짜로 줄 수 있나’라는 도덕적 물음에서 출발한다. 노동을 해야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전통적 산업 윤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고, 모든 국민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소득을 받을 가치가 있다.”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이 사람들에게 공짜로 돈을 주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는.

“그들은 인간이 반드시 노동 윤리나 자유 시장 방식에 따라 통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이 지급될 경우, 그들은 기본소득에 의존하고 이에 따라 게을러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파시스트적인 발상이다.”

-한국에서도 성남시의 청년배당, 서울시의 청년수당 등 기본소득의 성격과 비슷한 정책이 나타나고 있지만, 시행 전부터 논란을 빚고 있다.

“한국에서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둘러싸고 나타나고 있는 논의들을 살펴보면, 이 반대 근거는 전 세계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의 논리와 같다. 공정하면서도 생활 유지가 가능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결국 도덕적 문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경제적 문제로 치부하거나, 합법성 여부만을 따지고 있다.

우리는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굉장히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정치적, 재정적 실현 가능성과 고용률에 대한 효과 등에서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청년배당 정책에는 다른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측면이 있고, 이는 다른 나라에게도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

-아직 그 효과가 온전히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기본소득의 보편적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본소득은 인간에게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자유를 통해 인간은 더욱 더 인간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 그들은 (기본소득을 지급받는다고 해서) 게을러지지 않는다. 인도의 기본소득 실험이 이 점을 증명했다. 기본소득이 지급되자 농업 생산성과 경작률은 의미있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사람들은 더욱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변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가질 필요가 있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실업률은 약 10%에 달한다. 하락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일자리를 갖는 완전 고용은 과거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는 직업이 없는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구시대적인 정치경제적 사고를 버리고, 사회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