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이 '트럼프 월드(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세상)'에 재빨리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트럼프노믹스(트럼프의 경제정책)'가 무역 등 실물경제를 통해 어떻게 미국 경제와 한국 경제에 파급될지로 관심이 옮아가고 있다.

9일 미국·유럽 증시가 1%대로 상승했고, 전날 급락했던 아시아 증시가 10일 일제히 급반등하면서 금융시장에서 '트럼프 쇼크'는 잦아들었다. 하지만 대규모 감세와 1조달러의 인프라 투자 등 국내 성장 정책과 보호무역주의를 결합한 트럼프노믹스는 점차 미국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구체화되면서 미국과 한국의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10일 노무라증권은 '트럼프가 아시아에 의미하는 것'이란 보고서에서 아시아 수출국 중에서 한국이 트럼프 공약 이행에 따른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경제가 최대 피해자 될 수 있다"

노무라증권은 보고서에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내년 한국 성장률이 1.5%로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노무라증권의 당초 전망(2.0%)보다 0.5%포인트 낮춘 것이다. 전망 하락폭은 홍콩(0.4%포인트), 싱가포르(0.4%포인트), 말레이시아(0.3%포인트) 등을 제치고 가장 크다. 한국의 성장률 하락폭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한국의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 비중은 작년 84.8%에 달했다. 트럼프가 선거 중에 불공정 무역을 한다고 비난했던 중국(41.2%), 일본(36.8%), 멕시코(72.8%)보다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1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주재로 경제현안점검회의가 열렸다. 차기 경제 수장 확정 여부가 불투명한 임종룡(왼쪽) 금융위원장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곁에 앉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향배도 걱정스럽다. 트럼프가 선거 중에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한·미 FTA는 일자리 파괴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트럼프가 한·미 FTA 전면 재협상에 들어가 협정을 정지시키면 향후 5년간 한국의 수출 손실은 269억달러(약 31조원)에 이르고 일자리 24만개가 손실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노믹스는 미국 경제 '양날의 칼'

트럼프는 지난 9월 "미국 경제를 4% 성장으로 올려 놓겠다"고 했다. 대규모 감세와 인프라 투자 등으로 성장을 이끌고 해외로 나간 미국 기업들의 공장이 다시 돌아온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성장세로 복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가 '무역 전쟁'이라도 부른다면 미국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브루스 카스맨 JP모건체이스 수석연구원은 "만약 트럼프가 감세와 인프라 투자를 우선시한다면 성장을 북돋울 수 있지만, 무역과 이민 제한 정책에 초점을 맞춘다면 성장은 느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미국은 홀로 불황에서 벗어나겠다며 최고 관세 400%를 매기는 스무트-홀리법을 제정했지만, 영국 등 유럽 국가들과 보복 관세 경쟁이 벌어져 경제 상황을 악화시킨 경험이 있다.

또 과다한 재정 지출은 정부 재정을 악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킬 수 있다.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미 연준이 금리를 빠르게 올리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되면 '트럼프노믹스'는 성장에 실패하고 나랏빚만 늘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트럼프노믹스 대응책 빨리 마련해야"

우리 정부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이 한국 경제에 호재가 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10일 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운 인프라 투자 확대, 제조업 부흥과 같은 정책 방향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 요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재정 지출을 늘리고 규제를 걷어내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만큼 상승 기류를 타고 있는 미국이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그럴 경우 수출 중심 경제모델을 가진 한국도 과실을 따먹을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9일 '미국 신행정부의 향후 정책 방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미국의 재정 지출 확대에 맞춰 미국 조달시장 참여를 확대할 필요는 있으나,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 성향은 이런 진출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신속한 정부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트럼프 집권으로 보호무역이 확산하고 있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서는 수출 주도형 경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최대한 빨리 움직여 미국 정책에 어떻게 대응할지 계획을 짜는 일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FTA의 경우 농산물이나 자동차 관세를 낮추는 것을 검토하는 등 다양한 협상 대응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