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현대자동차와 같은 런닝메이트(running mate)가 필요합니다. 기존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의 성공 전략으로는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8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데일 포드 IHS 부사장(사진)은 이 같이 말했다. 데일 포드 부사장은 세계 최대 시장조사업체 중 하나인 IHS의 시장조사팀을 이끌고 있는 수석 애널리스트로, 주로 반도체 산업을 연구하고 있다. IHS에 흡수합병된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의 창립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포드 부사장은 최근 퀄컴과 NXP의 '빅딜'이 반도체 업계 전역에 걸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가장 유력한 반도체 시장으로 꼽히는 자동차 분야에서 주요 회사들 간의 합종연횡, 인수합병(M&A)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이어 그는 그동안 독자 노선을 취해온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 기업에게도 전략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데일 포드 IHS 수석애널리스트(부사장).

◆"삼성 반도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기업"

포드 부사장은 "세계 곳곳에 있는 반도체 회사에 가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기업은 삼성전자"라며 "메모리 반도체 회사의 특징일 수도 있겠지만 삼성전자는 외부 인력에 대해 항상 강한 경계를 품고 다른 회사들과의 파트너십이나 인수합병(M&A)을 두려워 하는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과 경영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그는 "삼성전자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모든 프로세스가 수직계열화돼 있는데, 이는 다른 업체들과의 수평적 파트너십을 중요하게 여기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매우 다른 점"이라며 "현재까지는 삼성의 이런 전략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전자의 이같은 경영 방식이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에서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포드 부사장의 주장이다. 그는 "삼성은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오랫동안 노력해왔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등) 일정 부분에선 성공했다"며 "하지만 자동차용 반도체처럼 더 이상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자동차 부품 시장은 M&A 없이는 쉽게 진입하기 힘든 가장 대표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우선 인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안전 규정이 무척 까다롭고, 오랜 기간 완성차 업체와 부품 수급 라인을 형성해온 반도체 업체들 간 카르텔도 견고하다. 퀄컴이 업계 역사상 최대의 인수가액을 들여가며 NXP를 인수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포드 부사장은 "자동차 반도체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지금 가능한 선택은 현대자동차와 같은 런닝파트너를 전략적 파트너로 삼아 성장하는 것"이라며 "두 회사가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를 전략적 파트너로 삼는다면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최대의 자동차용 반도체 업체 중 하나인 르네사스 역시 자국 기업인 도요타 등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고, 엔비디아 역시 아우디 등의 파트너사들과 성장 전략을 공유하며 성장했다"고 말했다.

◆"퀄컴·NXP, M&A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 발휘될 것"

포드 부사장은 최근 성사된 퀄컴과 NXP의 M&A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죽어가는 비즈니스(모바일 칩)에 있던 퀄컴은 이번 M&A를 통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업에 발을 담글 수 있게 됐고 NXP 입장에서는 커넥티비티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퀄컴은 무선 통신 분야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이고 NXP는 이미 자동차 분야에서 가장 큰 업체"라며 "NXP는 자동차용 반도체와 보안에 강한 반면 연결성 분야에서는 약점이 있었다"며 "여기에 퀄컴의 모뎁칩 기술이 합쳐지면 단숨에 자동차용 반도체, IoT 분야에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가 점점 둔화하고 있기 때문에 각 회사 경영진들은 회사를 키울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찾아 왔다"며 "반도체 업계의 기술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어 새 사업을 추진하는 데 드는 비용이 더 커지고 있어서 신사업 분야에 진출하는 데 M&A가 비용을 절감하는 데 최적의 방안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