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혁신가인가, 꿈에 빠진 몽상가인가.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Musk)에 대한 평가가 갈리기 시작했다. 머스크의 전기차와 우주개발 사업에 대한 투자자와 대중의 열광이 '실적 없는 비전'으로만 연명한다는 우려로 바뀌고 있다. 실제로 머스크가 운영 중인 테슬라와 솔라시티(태양광), 스페이스X(우주개발) 중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기업은 하나도 없고 채권 발행, 은행 대출 등 부채 규모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머스크에 대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 불리는 머스크가 날아오를지, 주저앉을지 결정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혁신가', 월가에서는 '몽상가'

머스크에게는 최근 악재(惡材)가 잇따랐다. 지난 5월 테슬라의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내면서 운전자가 사망했고, 9월에는 우주정거장으로 발사됐던 스페이스X의 로켓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스페이스X는 폭발 원인 규명조차 하지 못한 채 로켓 발사를 무기한 연기한 상태이다.

더 심각한 것은 빚더미에 오른 테슬라의 재무구조다. 3분기 기준으로 테슬라의 부채 총계는 99억달러(약 11조3300억원)에 이른다. 올 3분기에는 매출 22억9840만달러(약 2조6300억원)에 간신히 1억1140만달러(약 1275억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그 이전까지 7분기 연속으로 적자(赤字) 행진을 했다.

시장 분위기도 낙관적이지 않다. 일본 도요타·닛산, 미국 GM, 독일 폴크스바겐·BMW 등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70년 이상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온 기존 업체들이 전기차에 뛰어드는 것은 테슬라에 상당한 위협"이라고 분석했다. 테슬라는 2018년까지 연간 판매량을 50만대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업계에서는 올해 8만5000대를 판매한 테슬라가 2년 만에 6배 이상 규모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많다. 월가에서는 "일론 머스크의 '마스터플랜'은 거대하지만, 디테일(꼼꼼함)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태양광 사업을 하는 솔라시티도 사업을 하면 할수록 손실 폭을 불리고 있다. 올 2분기에는 매출 1억8570만달러(약 2126억원)에 순손실 2억5000만달러(약 2862억원)를 기록해 매출보다 손실 규모가 훨씬 많았다. 부채 역시 63억달러(약 7조2000억원)가 넘는다. 머스크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테슬라와 솔라시티의 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머스크가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딜(거래)을 추진하고 있다"고 깎아내렸다.

투자자들도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 9월 멕시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가 화성으로 간 사이에 투자자들이 내 계획을 백지화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야 화성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언제라도 자신의 경영권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것이다.

매번 도전하는 창업가는 머스크뿐

투자자들 시각과는 달리 머스크의 대중적 인기는 여전하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이후 최고의 혁신가로 대접받고 있다. 그를 돈방석에 앉게 해준 페이팔은 간편 결제 서비스의 원조(元祖)였고 전기차 대중화와 민간 우주산업도 머스크가 처음 개척했다. 페이팔 매각으로 번 돈을 몽땅 새 사업에 쏟아부었고 스페이스X를 설립할 때에는 독학으로 우주공학을 배워 로켓 설계와 디자인까지 주도했다. 독선적이라는 비판이 따라다니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머스크의 미래가 내년에 테슬라가 출시하는 보급형 차종 '모델3'의 성공에 달려 있다고 본다. 테슬라가 돈을 벌어야 스페이스X와 솔라시티의 비전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 한상린 교수(경영학)는 "머스크는 인류의 미래를 앞당기는 혁신가이긴 하지만 비전뿐만 아니라 실적도 보여줘야 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