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인 것 이상으로 편의점 직원이에요…내 모든 세포가 편의점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요." 서른여섯 살, 18년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자. 편의점 매대처럼 일괄적인 생. 뚜렷한 욕망 없이 묵묵히 그만의 성역(聖域)에서 편의점형 인간이 돼가는 후루쿠라 게이코가 있다. 최근 국내 발간된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 아쿠타가와상 2016년 수상작 '편의점 인간'. 자전적 경험을 픽션으로 버무린 이 소설의 저자 무라타 사야카(37)씨는 팬 사인회도 편의점에서 열었고, 이번 주에도 주 4일 편의점으로 출근한다. 소설을 통해 저자는 외친다. "24시간 영업으로 온종일 문을 엽니다. 연중무휴죠. 언제든지 이용해주십시오!"

◇소설·웹툰·드라마까지…편의점 왕국

편의점 점포 3만개 시대. 1989년 국내에 처음 들어온 편의점이 일상을 지배하면서 문화 전반으로 매장을 넓히고 있다. '편의점 인간'에서 드러나듯, 편의점은 태생적으로 '알바생'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tvN 드라마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혼술남녀', SBS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 숱한 드라마가 편의점을 배경으로 활용하고, 편의점 업체 GS25는 자체적으로 편의점 배경 웹드라마를 시즌3까지 제작했다. 드라마 평론가 공희정씨는 "가장 현대적이면서 깔끔하게 구획된 공간(편의점)이 도시 생활자의 피로를 두드러지게 묘사하기에 용이하다"면서 "이곳에서 인물은 상품과 공존할 수밖에 없기에 간접광고(PPL)도 쉽다"고 말했다.

편의점 업체 GS25가 지난해 제작한 4회짜리 웹 드라마 ‘25사랑병동’의 한 장면. 편의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청춘 로맨스다.

동네 구멍가게의 정(情)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 시내 알바생 대부분이 20대. 시급은 최저임금(6030원)보다 200원 많은 수준이면서, 고객의 '갑질 횡포'를 견디는 수행의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 2월 인터넷 카페 전국편의점알바생모임엔 웹툰 '연애의 정령'의 한 장면이 올라왔다. "웹툰에서라도 대리만족 하자"는 글이 따라붙었다. 편의점 알바생인 작중 인물이 진상 손님 대처법을 가르친다. 반말하면 반말로 응수, 계산할 때 돈을 집어던지면 똑같이 잔돈을 손님에게 집어던진다. "손님, 사은품 있습니다. 주먹밥요." 주먹이 진상 손님의 입을 강타한다.

◇24시간 돌아가는 22평의 소우주

웹툰 ‘연애의 정령’ 35화에 등장하는 편의점 알바생의 진상 손님 대처법.

24시간 영업은 편의점 세계를 규정하는 주요 단서다. 밤의 일상을 통해 내면의 민낯을 그려내기도 쉽다. 대학 강사에서 편의점 알바생으로 신분이 바뀐 한 여성을 그린 소설가 조해진의 단편 '산책자의 행복'은 묘사한다. "어둠을 가로질러 담배나 생수를 사러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항로를 갖고 있는 외로운 항해사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우주는 평균 22평(72㎡) 남짓. 이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고, 택배를 부치며, 책을 산다. 갑갑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는 데서 나아가, 이곳에서 집의 온기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웹툰 '와라 편의점'(2008~2014)의 인기몰이에 이어, 지난 4월부터 케이툰에 연재 중인 웹툰 '편의점 만화왕'은 편의점 음식을 조리해 '집밥'으로 바꾸는 마술을 선보이며 인기를 끌고 있다. 2005년부터 11년간 자취하고 있는 두순(31) 작가는 "혼자 살다보면 편의점 음식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데, 삼각김밥을 뜯어 간단히 볶거나 간장만 뿌려도 새로운 음식이 된다. 혼자 사는 젊은이들에게 집밥 조리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젊은이의 전유물?…"중·장년도 편의점으로"

편의점은 20∼30대 젊은 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 40대 이상 중장년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8월 편의점 CU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연령대별 도시락 매출 비중에서 40대 이상은 2014년 27%에서 올해 상반기 32.9%로 뛰었다. 경기 침체와 더불어 간편한 생활방식이 세대 전반으로 퍼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갔다. 편의점 안에 노인 상담 창구를 열어 건강 상담을 해주거나, 상품도 성인용 기저귀 혹은 노인용 간식류를 중점적으로 비치하고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이명진 교수는 "중·장년 중에도 경제적으로 불안한 이들이 많아지고 있고 가족 구조도 소규모로 재편되면서, 조만간 이들의 편의점 라이프 역시 대중문화의 소재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