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스타트업·벤처 기업에 대한 투자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O2O(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계사업) 등 IT 서비스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했으나, 올해 들어 바이오 투자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벤처캐피탈의 바이오 분야 투자총액이 IT서비스 분야 투자총액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바이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열풍이 강하다. 사진은 SK케미칼 연구원이 실험을 하고 있는 모습.

◆ 바이오 투자금 3400억...유틸렉스, 창업 1년 반만에 210억원 투자 유치

31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내 벤처캐피털의 신규 투자금은 총 1조4815억원이었다. 이 중 바이오 및 의료 분야 스타트업·벤처 기업에 투입된 자금은 총 3432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바이오 분야 누적 투자금(3170억원)을 이미 뛰어넘었다.

특히 올해 바이오 투자금 비중은 23.2%로 O2O 등 IT 서비스 투자금 비중(18.1%)을 크게 앞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체 투자금(2조858억원)의 19.3%가 IT 서비스 분야에 몰렸으며, 바이오 투자금 비중은 15.2%에 불과했다.

바이오 벤처 기업에 대한 100억원 대 이상의 대규모 투자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면역 항암제를 개발하는 유틸렉스는 지난해 2월 설립돼 올해 8~9월 두차례에 걸쳐 총 210억원을 투자 받았다. 벤처 투자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2차 투자 당시 벤처캐피털들이 산정한 유틸렉스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은 1000억원이었다. 유틸렉스는 현재 밸류에이션 2000억원 기준으로 중국 및 국내 벤처캐피털로부터 추가 투자 유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벤처캐피털의 업종별 신규 투자금 비중

◆ 바이오 활황에 일부 VC 투자 수익률 2000%

올들어 바이오와 IT 서비스의 투자 흐름이 바뀐 데는 주요 바이오 기업들이 실제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기업 가치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바이오 의약품 무역수지는 2009년 이후 6년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수출액이 총 8억924만달러(약 9300억원)로, 2014년(5억8892만달러)보다 37.4% 증가했다. 특히 셀트리온의 바이오 시밀러(복제약) ‘램시마’ 원액 수출 규모가 전체 수출액의 절반 이상인 4억3932만달러(약 5000억원)에 달했다.

김형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전무는 “바이오는 부가가치가 워낙 큰 사업이기 때문에 성공만 한다면 ‘대박’을 낼 수 있는 분야”라며 “과거에는 바이오 벤처 기업들이 몸값만 높고 실적을 못 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연구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업계 전반에 대한 투자 심리도 개선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벤처캐피털들의 투자 회수 실적도 좋아졌다. 김 전무에 따르면, 지난해 대다수 벤처캐피털들이 기업공개(IPO)나 구주 매각 등을 통해 높은 수익률로 투자금을 회수했다. 일부 벤처캐피털의 경우 20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오 벤처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이 전반적으로 크게 상승하고 있지만, 벤처캐피털의 투자 열기는 꺾이지 않을 전망한다.

이규원 포스코기술투자 심사역은 “바이오 벤처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과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는 상장사들의 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워낙 높기 때문에 바이오 업계에 대한 투자 심리는 여전히 좋다”고 말했다. 이 심사역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바이오 분야 상장사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20~30배에 달한다. 바이오 업체 중에서도 건강 식품 사업을 주로 하는 회사들의 PER은 30~40배 수준이다.

최근 1~2년 간 상당수의 바이오 전문 벤처 펀드가 결성된 점도 바이오 벤처에 대한 투자 열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1월에는 1500억원 규모의 ‘제3호 한국의료 글로벌 진출 펀드’가 조성됐으며 6월에는 370억원 규모의 ‘SEMA-인터베스트바이오헬스케어전문투자조합’이 결성됐다.

◆ IT 서비스 침체...바이오 벤처 투자는 세계적 추세

벤처 투자금이 바이오 업계에 쏠리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IT 서비스 산업에 대한 투자 열기가 침체됐다는 것이다.

벤처캐피털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O2O 업계에 많은 돈이 투입됐지만 상당수 업체들이 실적을 제대로 못 내고 있어 투자 매력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상당수 IT 서비스 벤처 기업들이 200억~500억원 밸류에이션으로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지만, 이 중 눈에 띄는 실적 개선세를 보여주고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

특히 대기업인 카카오(035720)도 O2O 사업에서 고전하고 있는 만큼,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나 벤처 기업이 해당 분야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투자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미래에셋대우 박정엽 연구원은 “현재 카카오의 O2O 사업 매출은 미미한 수준”이라며 “이 부분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때 기업 가치도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 벤처 기업에 대한 투자 증가는 세계적인 추세다. 아마존과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앞다퉈 거금을 들여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테크크런치 등 외신에 따르면,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벤처 투자 회사 베조스익스피디션스(Bezos Expeditions)는 피델리티 등과 함께 노화 방지 치료법을 개발 중인 스타트업 유니티바이오테크놀로지(Unity Biotechnology)에 1억1600만달러(약 1300억원)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조스익스피디션스는 이 외에도 암 치료제 개발사 주노테라퓨틱스(Juno Therapeutics)에 투자해 상장시킨 바 있다.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의 계열사인 베릴리(Verily)는 지난 8월 영국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바이오 벤처기업 갈바니바이오일렉트로닉스(Galvani Electronics)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두 회사는 향후 7년 간 갈바니바이오일렉트로닉스를 통해 5억4000만파운드(약 75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