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미래는 정부와 과학자들이 얼마나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64·사진) 영국 왕립학회 회장(케임브리지대 교수)은 28일 서울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인공지능(AI)이나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 미래 투자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정치인들의 몫이지만, 그걸 구체화하고 실현하는 것은 과학자"라며 "두 집단의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1660년 설립된 영국 왕립학회는 뉴턴·다윈·제임스 와트·아인슈타인 등 유명 과학자들이 몸담았던 최고 권위의 과학단체이다. 1600여 명의 회원 중 노벨상 수상자만 80명이 넘는다. 라마크리슈난 회장도 세포 안의 단백질 공장으로 불리는 '리보솜'의 구조를 밝힌 공로로 2009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라마크리슈난 회장은 "왕립학회를 비롯한 영국 과학계는 정부 정책에 대해 끊임없이 개선안을 제안하고, 영국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면서 "이런 조화 덕분에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를 만든 딥마인드와 같은 혁신적인 기업이 영국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일방적인 정부 주도의 과학기술 정책으로는 인류의 삶을 바꿀 기초 연구나 혁신적인 기술기업을 기대하기 힘들다고도 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과학기술 투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면서 "(정부가 모든 과제를 정해주기보다는) 과학자들이 제안하는 연구의 비중을 높여야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과학자들에게 과학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조언해 달라고 하자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1976년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재미가 없어서 다시 생물학을 학부 과목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면서 "퇴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고, 결혼해 아이도 둘 있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연구에서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벨상의 비결이 '재미'였다는 것이다.

라마크리슈난 회장은 과학자들이 강연이나 저술활동 등을 통해 대중에게 더 다가가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과학자들의 연구비는 세금인데, 자신이 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대중의 당연한 권리"라며 "줄기세포나 유전자 편집 같은 과학에서 중요한 윤리적 문제를 결정할 때도 전 사회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