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2시 경기도 안양시의 작은 상가 건물 4층에 위치한 에이치엘(HL)사이언스 본사를 방문했다. 사무실 내부에 들어서자 따뜻한 느낌의 노란 불빛과 로비 중심에 놓인 푸른 나무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50여 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는 이곳은 2000년 회사 창업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에이치엘사이언스 본사 로비 중심에 나무 조형물이 놓여 있다.

이해연 HL사이언스 대표는 “여자가 창업을 하더니 상장까지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하지만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더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꺼냈다.

◆ 열악한 국내 건강기능식품 현실 마주하며 창업 결심

건강기능식품 제조·판매 전문 업체인 HL사이언스가 오는 28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다.

이해연 HL사이언스 대표는 2000년 창업 전 7년 동안 건강기능식품 업체에서 일하며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쌓아갔다. 이 대표는 당시 해외상품 기획 파트를 맡아 직접 미국, 일본 등 건강기능식품을 선도하는 선진국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당시 선진국들은 이미 시장 분위기가 질병 치료 목적에서 벗어나 예방 쪽으로 변화하고 있었고, 관련 상품도 많이 개발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피곤할 때 약국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제품은 박카스나 원비 등의 자양강장제가 전부였고, 여성들을 위한 제품은 철분제나 비타민C 정도 뿐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표는 2000년 당시 첫 출산을 경험하면서 여성의 건강을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때 전문적인 제품 개발을 통해 맞춤형 관리가 가능한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표는 2000년 9월 HL사이언스의 전신인 ㈜건강사랑을 설립했다. 사명은 올해 7월 변경했다. 100% 이 대표 개인 자금을 운용해 단 2명의 직원과 함께 시작한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이 대표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창업 초기부터 정말 제대로 된, 순수 국내 기술로 생산한 건강기능식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서 인정받겠다는 목표가 뚜렷했다”며 “목표가 가시화될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했다.

◆ ‘워킹맘’ 고충에 4년 동안 월급도 못 챙겨…꾸준한 연구개발이 성장 발판돼

그러나 ‘워킹맘’으로서 사업을 운영하는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이 대표는 “회사도 회사지만 아이와 회사를 같이 키우는 상황이 힘에 부쳤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이도 훌쩍 크고 회사도 크게 성장했지만,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항상 저리다”고 말하는 이 대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해연 에이치엘사이언스 대표.

수익도 쉽게 나지 않았다. 창업 후 4년 동안 이 대표 본인 월급은 한 푼도 없었다. 그는 “개인 자금을 계속 까먹는 상황이었다”며 “4년 동안 직원들 월급은(물론 2명뿐이었지만) 밀린 적이 없었지만, 내 월급은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개인 신용 대출을 내면서까지 연구개발에 몰두했다. 그리고 기회는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왔다.

이 대표는 2002년 2월 석류 여성 호르몬 관여 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문헌 조사를 통해 확인하고 관련 연구에 착수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갱년기 여성에 대해 호르몬제 치료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해 7월 미국 국립보건원은 대규모 연구를 통해 해당 호르몬제가 발암물질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시장은 안전한 호르몬 대체재를 찾기 시작했다. 특히 ‘천연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시장 흐름을 파악한 이 대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미 연구개발 중이던 석류 추출 물질을 이용한 일반식품을 만들어 출시했고, 판매량은 급증하기 시작했다. 좋은 원료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이 대표는 이란산 석류 원료도 대규모로 확보해둔 상태였다.

이후 비슷한 석류 제품이 우후죽순 출시되기 시작했다. 국내 보유 중이던 원료가 동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이미 대규모 원료를 비축해 둔 HL사이언스는 업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실질적인 매출이 나기 시작했다. 이 대표 본인의 월급은 물론, 추가 연구개발을 위한 비용도 마련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2003년 당시 HL사이언스는 약국이 유일한 상품 유통 경로였다. 그런데 한 홈쇼핑 업체가 이 대표에게 먼저 계약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도전하기로 마음먹었고, 2004년 초부터 홈쇼핑 방송에서 HL사이언스의 석류 관련 제품을 판매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동안 한 홈쇼핑 채널에서 관련 부문 중 항상 매출 1위를 차지하던 경쟁사를 누르고 매출액 1위를 탈환했다. 이 대표는 “당시 그 홈쇼핑 채널에서 한달 매출액 20억~30억원을 꾸준히 기록했다”며 “우리는 큰 기업도 아니고 홍보를 많이 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런 실적을 낸 것은 순전히 고객이 우리를 인정해줬다는 의미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직한 기술과 품질력으로 고객을 향한 진심이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7개 홈쇼핑 채널과 온라인 쇼핑몰 등으로 유통 경로를 확대한 상황이다. 대형 제약사와 건강기능식품 업체 8곳과도 제품과 기술 계약을 맺었다. 중국 등 해외 기업들과 유통도 더 확대할 계획이다.

이러한 가운데 HL사이언스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167억원, 영업이익은 32억7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액은 69.5%, 영업이익은 334.9% 증가했다. 이 대표는 “회사를 설립한 후 2015년까지 연평균 58.1%의 매출 성장률을 달성했고, 지난 200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는 11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 경영 철학은 ‘창조적 혁신과 신뢰’…공모 자금으로 연구개발 박차 가할 것

지난해 큰 충격을 안긴 ‘가짜 백수오 사태’는 이 대표에게도 위기감을 줬다. 그는 “우리가 13년간 공들여 연구한 결과물인 석류 건강기능식품을 지난 2015년 처음 시장에 공개했는데, 바로 그날 백수오 사태가 터졌다”며 “당시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우리 제품에도 불이 번질까 우려해 판매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해당 제품은 올해 다시 판매를 시작했다.

이 대표는 경영 철학으로 “창조적 혁신과 신뢰” 두 가지를 꼽았다. 그는 “항상 경쟁 우위에 있는 막강한 회사들도 발전과 혁신을 거듭하지 않으면 한순간 추락하기 마련”이라며 “신뢰를 위해서 스스로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이치엘사이언스가 판매 중인 제품들을 사무실 한편에 전시해 뒀다.

그는 이어 “우리는 현재 가진 제품과 기술은 오늘까지만 새로운 것이고, 내일은 더 발전된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웃음을 지으며 “그래서 직원들을 들들 볶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HL사이언스는 지난 17일 공모가를 2만7000원으로 확정했다. 공모 희망밴드는 2만3900~3만700원 이었다. 이에 따라 공모 금액은 408억원, 상장 후 시가총액(공모가 기준)은 1390억원이 됐다.

이 대표는 이번 공모자금 대부분을 연구개발에 활용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 석류 농축액 등 7건의 원료를 개발해 식약처의 개별인정형 원료로 등록했고, 3건의 신기술에 대해서도 식약처의 심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에 60억원 정도 자금이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최근 주력하고 있는 퇴행성 뼈관절 치료제, 치주질환 개선치료제 개발 연구와 이너뷰티(Inner beauty) 물질 관련 사업에도 자금을 활용할 계획이다.

해외 비용으로는 20억~30억원 규모의 자금이 사용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해온 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생성한 자원들을 각국 식품의약국에서 인허가 받는 데 들어갈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의 한계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의 기술 부가가치를 끌어내고 싶은 것이 최대 목표”라며 “앞으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자원들을 연구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 목표를 모두 이루려면 10년쯤 지나 나이가 60은 되어있지 않을까”라며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