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부 변명이나 듣자고 여기에 앉아 있는 것 같으냐.”

지난 25일 국회 경제재정연구포럼 조찬 간담회에 참석한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발제 중 한 중진의원에게 고성(高聲)을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의 4선(選) 변재일 의원이 고함을 질렀다. 민주당의 직전 정책위 의장이었다.

변 의원은 최 차관이 “증세(增稅)를 추진하면 일시적으로 세입 증대가 되겠지만 투자, 경기회복 둔화로 재정 건전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하자 화를 냈다. 정부의 ‘증세 불가 입장’이 반복된 것에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최 차관은 경제재정연구포럼 공동대표인 장병완 의원(3선·국민의당)에게도 한마디 들었다. 장 의원은 “여야간 입장 차이가 있지만 접점을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간담회를 열었는데, 차관이 대선배들에게 ‘내 얘기가 옳다’고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제재정연구포럼은 여야의 경제관료 출신 의원들이 주도하는 모임이다. 공동대표인 장 의원과 김광림 의원(새누리당·3선)은 각각 기획예산처 장관,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김진표 의원(민주당·5선)은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최 차관을 향해 화를 냈던 변 의원은 정보통신부 차관 출신이다. 김광림 의원이 차관, 김진표 의원이 부총리였던 재정경제부에서 최 차관은 장관실 비서관으로 일했다. 장 의원이 “대선배들이 고언을 하고 있는데...”라고 쓴소리를 한 것은 이런 관계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를 보면서 적잖게 놀랐다. 이날 최 차관의 모습은 평소에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최 차관은 논리정연하면서도 사고가 유연한 사람이다. 기자들이 설익은 비판성 질문을 던지더라도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면서도 정부 입장을 설득시켰다. 야당에 있는 선배들과 증세에 대한 접점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파열음이 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날 파열음은 예고된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금 인상을 얘기하는 것은 국민에게 면목이 없는 일”이라면서 ‘증세 불가(不可)론’을 정부의 ‘불문율(不文律)’로 만들어 놨다. 현 정부는 ‘세율(率)과 세목(牧)을 올리면 안된다’는 신앙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여기에 ‘토’를 다는 것은 절대권력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 없다.

경제는 생물처럼 변하고, 정책도 그에 맞춰 자유롭게 변화해야 대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문률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관료들 입장에선 토론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최 차관이 야당에 있는 선배들에게 같은 얘기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정부와 정책협의를 한 야당 관계자들이 관료들을 향해 "참 답답한 공무원들"이라고 비아냥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모습은 2012년 대선 후 꾸려졌던 ‘밀봉(密縫) 인수위’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인수위는 토론도 없고, 제대로된 언론 브리핑도 없었다. 인수위원들은 시키는 일만 했고, 기자들은 불러주는 것만 썼다. 이런 구조는 정부 출범 후 청와대가 부처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반복됐다. 부처는 청와대가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하청공장이나 다름 없었다. 토론하고 정책을 제안할 기회를 잃어버린 공무원들은 ‘답답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1년 2개월 후 사라진다. 그러나 국가 정책의 주춧돌인 관료들은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갑갑한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