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에서 28세대짜리 빌라를 짓는 건설사 사장 A씨는 공사에 필요한 돈 14억원을 은행 대신 P2P(peer to peer) 대출 서비스 '테라펀딩'을 통해 마련했다. P2P 대출은 돈이 필요한 사람이 전문 중개업체를 통해 대출금·사용처 등을 올리면, 불특정 다수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금융 서비스다. 지난 20일 A씨에 대한 대출을 집행하면서 '테라펀딩'의 누적 대출액은 500억원을 넘어섰다. 한국 최초로 '500억 P2P 회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은행 문턱은 못 넘지만, 그렇다고 2금융권의 높은 금리를 감당하기 힘든 저(低)신용자의 대출 '수요'와 예금 금리가 연 1%까지 내려간 저금리 시대에 돈 굴릴 곳을 찾지 못한 투자자들의 자금 '공급'이 만나면서 P2P 대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다. 빠르게 늘어나는 P2P 대출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이번 달 안에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는 방침이어서 어떤 방향의 규제가 나올지에 업계와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틈새' 공략 P2P 대출, 1년 새 10배 성장

한국P2P금융협회와 금융위원회가 집계한 결과 지난해 말 약 350억원 수준이었던 P2P 대출업의 누적 대출액은 지난달 2900억원을 넘어선 데 이어 이번 달에 3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10개월 사이에 P2P 대출이 10배 수준으로 불어난 것이다. 지난 6월 출범한 P2P금융협회에 등록된 P2P 대출 회사는 29개(10월 초 기준)이고 이 중 6개는 누적 대출액이 200억원을 넘는다.

미국에선 대형 P2P 중개 회사인 렌딩클럽(Lending Club)이 2014년 나스닥에 상장하고 P2P 대출 규모가 120억달러(약 14조640억원, 2015년 12월 기준)에 달할 정도로 P2P 대출은 주요 금융 기법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은행 등 기존 금융업계가 시장을 주도하는 한국에선 몇몇 업체가 명맥만 유지하다가 핀테크(금융과 정보기술의 결합)에 투자가 몰리기 시작한 약 2년 전에서야 P2P 대출이 본격화했고 지난 1년 사이 가파르게 성장했다. 한국P2P금융협회 박성준 부회장('펀다' 대표)은 "저금리 장기화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P2P 대출로 몰리고 있다"며 "아직은 관련 규제가 촘촘하지 않아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다는 점도 P2P 대출 산업의 성장을 이끈 듯하다"라고 말했다. 신종(新種) 금융인 P2P 대출은 지금까지 지방자치단체 관할인 대부업으로 분류돼 규제가 비교적 느슨한 편이었다.

◇'묻지마 투자'는 위험, 가이드라인 마련 중

P2P 대출 중개 회사의 젊은 창업자들은 저금리가 장기화하는 '투자의 암흑기'에 기존 금융의 틈새를 파고들면서 산업을 키웠다. 이들은 시중은행이 거들떠보지 않아 제2금융권으로 밀려나는 대출 수요자들을 주로 공략한다. 소형 부동산 건설 자금을 빌려주는 '테라펀딩', 자영업자의 사업 자금을 대출하는 '펀다', 50~100명으로부터 자금을 모아 펀드를 만든 뒤 여러 대출자에게 돈을 빌려줘 떼일 위험을 줄이는 '어니스트 펀드', 중신용자·소상공인에 중금리 신용 대출을 해주는 '미드레이트' 등 대출 대상과 전략은 업체마다 다르다.

P2P 대출은 보통 10% 초반대의 기대 수익률을 투자자에게 제시한다. 대출 부도율은 아직까지는 0%에 가깝다. 이런 성과는 일단 고무적이지만 금융 당국, 나아가 업계도 P2P 대출을 저위험·고수익 투자로 보는 '묻지마 투자'가 몰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P2P 대출에 투자한 돈은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니고 대출자가 돈을 갚지 않을 경우 돈을 떼일 수도 있다. 한국보다 앞서 P2P 대출이 보편화한 해외에선 부적절한 대출 심사(렌딩클럽), 허위 대출(중국 업계 4위 'e쭈바오')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금융 당국은 이런 문제들을 감안해 P2P 대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P2P 대출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예치금과 회사 운영비를 확실히 분리하는 등 투자자 보호 방안에 대해 업계와 당국이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며 "하지만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투자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면 간신히 불붙은 P2P 대출 시장이 얼어붙게 할 수도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P2P대출

‘개인이 개인에게(peer to peer·P2P)’ 해주는 대출이라는 뜻으로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중개 업체를 통해 대출을 신청하면 불특정 다수인 투자자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빌려주는 금융 방식이다. ‘대출형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이라고도 불린다. 보통 은행에서 돈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출을 신청하고, 투자자는 이자를 받아 수익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