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동안 생물학의 대표 실험동물로 활용돼 온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유전체가 해독됐다.

권태준 UNIST 생명과학부 교수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유전체와 4만여개의 유전체의 염색체를 규명하고 19일(현지시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과 일본, 한국을 비롯한 7개국에서 60명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2009년부터 7년간 진행됐다.

권태준 UNIST 교수(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아프리카발톱개구리 유전체 해독 연구에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체외수정으로 한번에 지름 1mm 크기의 큰 알을 수백 개씩 낳는다. 유전자의 기능 발현을 조절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사람을 포함한 척추동물의 발생 과정에서 중요한 유전자를 연구하는 발생학, 세포생물학, 생화학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됐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존 고든이 체세포 핵치환 실험으로 ‘어른 세포가 다시 배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보여준 실험에도 아프리카발톱개구리가 활용됐다.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유전체 해독은 까다롭다.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은 부모에게 하나씩 염색체 그룹을 물려받아 2개의 염색체 그룹(2배체)을 지닌다. 이와는 달리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부모에게 2개씩 염색체 그룹을 물려받기 때문에 염색체를 분석하는 작업은 훨씬 복잡하다.

권태준 교수는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4개 유전체 그룹으로 이뤄진 독특한 동물”이라며 “이번 유전체 해독으로 생물학 전반에 활용될 효과적인 실험동물 모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해독한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유전체와 지난 2010년 유전체가 해독된 서양발톱개구리를 비교했다. 서양발톱개구리는 인간 유전체처럼 부모에게 2개 염색체 그룹을 물려받는다. 두 종을 비교해 물려받는 염색체 그룹 수(배체수) 변화가 발생학, 유전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집중 분석했다.

분석 결과 아프리카발톱개구리는 4개 유전체 그룹에서 각각 9개의 염색체를 지닌다. 연구진은 이들 염색체의 DNA 반복서열을 분석해 크기가 큰 L염색체 9개와 크기가 작은 S염색체 9개가 각각 다른 종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염색체 속에 흔적만 남는 ‘유사유전자’를 분석해 서양발톱개구리와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조상이 약 4800만 년 전에 분화했고, 2배체를 이루던 두 종의 유전체가 1700만 년 전에 합쳐져 현재의 아프리카발톱개구리가 탄생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권태준 UNIST 교수가 수조 속에 든 아프리카발톱개구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권태준 교수는 “서로 다른 종에서 염색체 그룹이 합쳐지면 모든 유전자가 살아남을지 사라질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며 “해독된 유전체를 살펴본 결과, 아프리카발톱개구리에서는 신호전달과 대사, 구조 형성에 작용하는 유전자는 두 종의 것이 모두 유지됐고, 면역체계나 DNA 손상복구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한쪽만 살아남은 게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또 “그동안 식물에서만 볼 수 있었던 4배체 유전체를 동물에서 최초로 확인하고, 진화적으로 유전자 변화를 살핀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진화를 통해 새로운 유전자가 생성되는 과정과 같은 기초 연구뿐 아니라 암이나 선천성 기형처럼 배체수 변화가 흔히 나타나는 질병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