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진핑 정부가 작년 말 향후 5년간 국가 운용 밑그림으로 내놓은 '제13차 5개년 계획'에는 5대 이념으로 혁신·균형·개방·공유와 더불어 '녹색(綠色)'이 들어갔다. 구호만이 아니다. 행동에도 나섰다. 중국은 작년 20만 대가 넘는 전기차를 생산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전기차 생산국이 됐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투자와 생산도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7년이나 앞서 녹색 성장을 신(新)국가 발전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신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 전략으로 녹색 성장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녹색 성장은 2013년 박근혜 정부 들어 '이전 정부 색깔 지우기' 와중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3년을 허송세월한 사이 중국이 세계 녹색 성장 주도권을 잡겠다고 나섰다.

앞선 정부의 경제정책 색깔 지우기(reset·재설정)가 5년마다 반복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이후 성장 전략으로 추진했던 '벤처 창업 지원'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 "벤처 비리, 벤처 거품 붕괴로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는 "벤처 지원 정책이 전통적인 중소기업을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대신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을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들고 나왔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워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 초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맞았던 이명박 정부는 금융사의 해외 진출이 어려워지자 '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을 슬그머니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대신 '녹색 성장'을 새 정책 화두로 꺼내 들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생기는 정책 단층(斷層)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지우개로 지우고 새로 쓰듯이 다른 경제정책을 내놓으면서 과거 성과가 쌓이지 않고 5년마다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정책 블랙홀'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리우올림픽에서 개인 기록이 미국보다 못한 일본이 계주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2위를 한 것은 바통 터치를 잘했기 때문이다. 국가 간 경제 경쟁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대통령이 연임하면 8년, 중국은 10년 동안 일관된 경제정책을 펼 수 있다. 우리는 5년 단임 대통령제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사전에 충분한 계획이 없으면 대통령 임기 5년이 그냥 지나가버린다"며 "경제 구조 개혁이나 장기 성장 전략 같은 과제는 5년을 뛰어넘어 물 흐르듯이 이어갈 방법을 찾아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