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스는 투자 받기 어려운 초기 기업에 투자 기회 제공하는 혁신적인 정책”

지난 8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스타트업 생태계 포럼에서 호창성(42) 더벤처스 대표이사를 만났다. 호 대표는 중소기업청 팁스(TIPS·민간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 사업) 보조금을 받아주겠다며 스타트업 지분을 가로챈 혐의로 4월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였다. 당시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던 호 대표는 수척한 얼굴로 “변호사로부터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자제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할 말은 많은데 애써 자제하는 듯했다.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이사는 13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팁스 제도의 취지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부족해 내가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지난 7일, 법원은 호 대표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더벤처스의 지분 취득이 팁스 운용사의 권한과 임무 범위 안에서 이뤄진 일이라는 것이다. 팁스는 더벤처스와 같은 투자사가 스타트업에 1억원을 투자하면 정부가 최대 9억원을 추가로 투자해주는 제도다. 이 때 팁스 운용사는 스타트업의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데, 더벤처스가 투자사의 지위를 내세워 5개의 창업 팀으로부터 29억원 규모의 스타트업 지분을 부당하게 편취했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었다. 검찰은 호 대표에게 징역 7년을 구형한 바 있다.

1심 판결이 나온 뒤인 13일 오후, 서울 역삼동 더벤처스 본사에서 호 대표를 만났다. 그는 8월 부산에서 만났을 때보다 살이 좀 더 쪘으며 안색도 좋았다. 이날 인터뷰에는 호 대표의 부인인 문지원 빙글 대표도 동석했다.

호 대표는 “팁스 제도의 취지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부족해 오해가 있었고, 이 때문에 내가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더벤처스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과도한 지분’을 받았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초기 기업 투자에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 투자사 지분율이 높은지 낮은지 판단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호 대표는 또 “실패한 사람에게 큰 책임을 지우는 사회적 분위기때문에 정부 관계자들도 혹여 문책을 당할까봐 팁스 제도와 같은 혁신적인 정책을 내놓길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재앙과 같은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소감이 어떤지.

호창성(이하 호) : “겪지 않아야 할 일을 겪었던 만큼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무죄 판결을 받고 나니 개인적으로도 기쁘고, 많은 사람들이 벤처 초기 투자와 팁스 프로그램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7월에 보석으로 석방된 뒤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했는가.

호 : “문지원 대표가 두부를 사들고 마중나와 같이 두부를 먹으며 재회했다 (웃음).”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문지원(이하 문) : “처음 팁스 제도가 등장했을 때 업계 선배들이 ‘정부에서 하는 일에 엮이지 말라’고 조언했음에도 취지가 좋아 참여했는데, 결국 이런 결과를 얻었다는 게 많이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대해 겁을 먹고 있는 것 같다.”

호 : “엔젤(개인) 투자자에 대한 잘못된 사회 인식이 생겨났다는 점이 속상했다. 내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과도한 지분’을 받았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사실 과도한 지분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우스운 표현이다.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서 지분율이 높은지 낮은지 판단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스타트업에 투자해 지분을 10%만 받았더라도 피투자사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지분율이 과도하게 높다고 볼 수 있는 반면, 지분 40%를 받아도 역할이 크다면 지분율이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투자사의 지분율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이 옳다고 보는가.

호 : "우리는 '컴퍼니 빌더(company builder)'라는 사업 모델을 지향한다.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회사를 함께 키워나간다. 나는 2007년 미국에서 비키(Viki)를 창업할 당시 수백개가 넘는 벤처 투자사들로부터 투자를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그 때 창업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체험했기에, 더벤처스를 통해 초기 기업에 투자하고 창업가들과 생사를 함께 하는 동반자가 돼주고 싶었다. 더벤처스는 법인도 설립되지 않은 초기 사업 팀에도 여러 차례 투자했다. 단지 막연한 사업 아이디어만 있었을 뿐인데, 더벤처스가 그 창업팀과 함께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하고 기획·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 경우 단순하고 획일적인 지분율 책정 기준을 적용해선 안 된다."

-팁스 제도에도 그런 유동적인 지분율 책정 기준이 적용되는지.

호 : “팁스는 운용사의 지분율을 40%까지 허용하고 있다(현재는 이 지분율 한도가 30%로 낮아진 상태다). 단순한 재무적 투자 프로그램이 아니었던 것이다. 투자를 할 뿐 아니라 공동 운명체로서 사업을 함께 키워나가고 노하우를 전수하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였다고 생각한다.”

-팁스 제도 자체에 문제가 없었다면, 호 대표는 왜 구속된 건가.

호 : "팁스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제도의 취지에 대해 사회적인 공감대가 부족했다고 본다. 사실 팁스 제도는 일반인들에게 굉장히 낯설게 보일 수 있지만, 취지는 좋은 제도다. 투자를 받기 어려운 초기 기업들 입장에서는 투자 유치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위험(리스크) 부담도 정부가 어느 정도 같이 떠안기 때문에 투자사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이 취지가 잘 살았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창업가에게 무턱대고 돈을 줬다고 오해한 것 같다."

-회사에 복귀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했는지.

호 : “피투자사들의 후속 투자 유치 작업을 재개했다. 최근 6개월 간 마이리얼플랜, 컷앤컬, 펀다, 글로우데이즈, 하우투메리 등이 후속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

-이번 사건을 겪고 나서 스타트업 투자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지는 않았나.

호 : “솔직히 심적으로는 그런 회의감이 안 들 수 없다. 그래도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원석을 발굴해 빛나게 만들자는 철학은 여전하다. 투자 활동은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것이다.”

-호 대표가 구속됐을 당시, 더벤처스 투자 심사역이었던 김모 이사때문에 억울하게 같이 엮였다는 얘기도 돌았다 (김 전 이사는 지난해 11월 보조금 횡령 및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호 : "검찰이 어떤 배경에서 수사를 시작을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일때문에 수사가 시작됐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고, 우리가 답변할 내용은 아닌 것 같다."

-구속돼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이 있는지.

호 :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기 어렵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피투자사 대표들이 많은 응원을 해줬다. 구속돼있는 동안 직접 찾아오기도 했고,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문 : “사실 너무 힘들어 전부 다 놓아버리고 싶다가도 피투자사 대표들 덕에 버틸 수 있었다.”

-올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얼마나 더 할 계획인가.

호 : “우리는 보통 한 분기에 2개 기업에 투자해왔다. 올해도 내년에도 기존의 페이스를 유지할 것이다.”

-혹시 펀드 결성을 준비하고 있나.

호 : “아직은 고려만 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더벤처스의 명예가 어느 정도 실추된 게 사실이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호 : “투자사의 평판은 결국 시장에 의해 결정된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최근 스타트업 대표들을 대상으로 ‘가장 투자 받고 싶은 엔젤 투자사는 어디인지’ 설문 조사를 했는데, 더벤처스가 2위에 올랐다(1위는 한화S&C드림플러스였다). 지난 2014~2015년에는 1위를 했다. 더벤처스가 좋은 투자를 하느냐 나쁜 투자를 하느냐 여부는 실제로 투자 받은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의 인식 개선이나 제도 개선을 위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호 : “실패한 사람에게 큰 책임을 지우는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바꾸는 게 시급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정부에서 정책을 내놓을 때도 혹여나 문제가 생길까봐 혁신적인 정책을 내놓길 꺼리는 경우가 많다. 매출도 내지 못하는 신생 기업에 왜 국가가 나서서 투자했느냐고 비난을 받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는 재앙과 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