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사람들의 수명은 35세라고 한다. (장수하려면) 대박을 터뜨리거나 관리직으로 승진해야 하는 데 그런 사람은 매우 적다. 실리콘밸리 젊은이들은 35세 이후에 무슨 일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네이버 지식인과 비슷한 질의응답 사이트인 쿼라(Quora)에 올라왔던 질문이다. 우문(愚問)이라고 할 수 있는 가벼운 질문에 100개가 훨씬 넘는 현답(賢答)이 달렸다. “35세 이후 창업 성공 사례가 더 많고 일반적”이라며 “전제가 잘못됐다”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넷플릭스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와 위키피디아 공동 창업자인 지미 웨일스 같은 유명 기업인들도 답글을 남겼다.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를 37살에 창업했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47살 때”라며 “밤샘 작업 하는 게 힘들어지는 것을 빼면 나이 드는 게 그리 나쁠 것은 없다”고 했다.

35세 운운하는 질문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혁신적 기업 창업은 대부분 젊은이들이 한다는 편견이 있다. 벤처투자자인 비노드 코슬라는 “35세 이하는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이고, 45세 이상은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측면에서 보면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과 관련된 ‘대학 중퇴 신화’도 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대학 졸업장을 받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이자 유명 벤처투자자인 피터 티엘은 대학에 가지 않거나 중퇴하는 조건으로 매년 20명 정도를 선발해 10만 달러의 창업 자금을 대주고 있다.

하지만 코슬라의 과격한 발언에 대한 반박 증거도 많다. 미국 기업의 사례를 보면 대체로 나이 든 직원들이 젊은 직원들보다 아이디어를 더 많이 내고, 아이디어의 질도 뛰어나다고 한다. 가장 가치 있는 제안은 주로 55세 이상 직원들로부터 나온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12개 고성장 산업 분야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성공 기업인 500여명의 평균 창업 연령은 40세로 나타났다. 게이츠, 잡스, 저커버그 등 20대 창업 성공 신화가 주로 세간의 화제에 오르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다. 대부분의 20대 창업자들은 실패한다.

아이디어는 창업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경영·마케팅·재무 등 여러 분야에 걸친 노하우와 역량이 있어야 한다. 창업자가 혼자 할 수는 없다.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고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인맥과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20대 사회 초년생이 이런 능력과 자원을 갖추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청년 창업보다 중·장년 창업의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한국에서도 30세 미만이 창업한 기업의 5년 생존율은 16.6%로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낮다. 30대는 26.9%, 40대는 31%, 50대는 33.6%, 60대 이상은 32.8%다. 직장 생활 경험이 창업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창조 경제를 내세워 청년 창업 활성화 정책을 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정책의 실효성을 따지면 청년보다 중·장년층에 초점을 맞추는 게 훨씬 낫다. 더 큰 문제는 극소수 성공 신화에 현혹돼 대다수가 실패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선 청년들에게 취업 대신 창업을 권유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도전과 혁신을 높이 평가하고, 실패의 경험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덕분에 얼마든지 재기(再起)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실패의 쓴맛을 봤다는 사실이 엔젤·벤처 투자를 받는데 더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은 딴판이다. 젊음의 패기와 도전 같은 말로 포장하기에는 창업 현실이 너무 척박하다. 실패에 너그럽지 않은 사회적 풍토에 재기를 가로막는 제도적 걸림돌이 허다하다. 연대보증 같은 시대착오적 굴레도 남아 있다. “창업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동국대 경영대학원의 이영달 교수는 “한국에서 청년 창업 실패자의 선택지는 영원한 경제적·사회적 실패자로 살아가거나, '사기꾼'으로 변신하거나, '잠수' 또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3개 뿐”이라고 했다. 창조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뿌리내리기 전에는 청년 창업을 말릴 수 밖에 없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들어 청년 창업이 늘어나는 것은 위험 신호다. 정부는 창조경제 정책의 성과라고 자랑하고 싶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 청년들이 창업 전선에 내몰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증거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 기술 창업의 활성화는 중요하다. 기업 생태계에 새 피가 계속 공급돼야 산업 경쟁력이 향상되고 국가 경제의 활력이 증대될 수 있다. 그러나 창업 생태계도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덮어놓고 청년 창업을 부추기는 것은 중대한 정책 오류다. 청년들이 창업 대신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지금 한국 경제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