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만 해도 아무런 얘기가 없었습니다. 오늘(10일) 아침 삼성전자 구매 쪽에서 생산 중단 요청을 해왔어요. 기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뭔가 급하게 결정된 사안 같습니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부품 공급사 임원)

삼성전자가 대(大)화면 스마트폰 신제품 ‘갤럭시노트7’의 생산을 일시 중단하기로 10일 결정했다. 이날 삼성전자의 한 협력사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물량을 담당하는 베트남 공장을 포함한 주요 생산 기지에서 갤럭시노트7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 중국 등의 소비자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며 “삼성전자가 한국 국가기술표준원,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 중국 규제 당국 등과 논의해 생산 일시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대형 통신사업자인 AT&T와 T모바일, 버라이즌이 최근 갤럭시노트7 교환품 발화 사고가 발생한 이후 “새 제품 교환·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이 이번 조치의 결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폰 시장이다. 특히 갤럭시노트7과 같은 프리미엄폰 수요자가 많아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그 어떤 시장보다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제공

◆ 세계 최대 시장 美서 잇따라 “갤노트7 교환 중단” 선언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미국에서 잇따라 터진 갤럭시노트7 화재 사고가 이번 ‘생산 중단’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날 더버지, 안드로이드 폴리스 등 미국의 주요 정보기술(IT) 전문매체들은 “미국 2위 통신사업자인 AT&T가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몇 건의 갤럭시노트7 발화 사고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새 제품 교환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3위 사업자인 T모바일도 같은 날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갤럭시노트7 화재 보도에 대한 당국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새 제품 판매와 교환을 모두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AT&T와 T모바일이 움직이자 미국 1위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도 결국 “갤럭시노트7 교환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에서는 이달 5일(현지시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공항을 출발하려던 사우스웨스트항공 소속 여객기 내부에서 갤럭시노트7이 발화해 탑승객들이 외부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진 바 있다. 이 제품의 소유자는 “최근 새 제품으로 교환했는데도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CPSC와 연방항공청(FAA) 등은 이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또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ABC 방송 제휴사인 KSTP는 “미국 미네소타주 파밍턴에 거주하는 13세 여학생의 갤럭시노트7에서도 발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제품은 여학생이 손에 들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타올랐다. 여학생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경미한 화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텍사스주와 버지니아주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더버지는 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휴스턴에 거주하는 대니얼 프랭크씨의 갤럭시노트7에 갑자기 불이 붙었다고 보도했다. 프랭크씨는 이 제품을 지난달 베스트바이에서 교환했다고 밝혔다. 또 더버지는 “버지니아주의 숀 민터씨도 이날 오전 5시쯤 탁자에 놓여있던 자신의 갤럭시노트7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AT&T와 T모바일, 버라이즌이 갤럭시노트7 새 제품의 교환과 판매를 전면 중단하면서 삼성전자는 사실상 최대 프리미엄 스마트폰 판매 시장인 미국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김용석 성균관대 정보통신대학 교수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최대 판매처로 유럽과 북미 시장이 꼽히는데 그중에서도 미국이 최대 시장”이라며 “미국에서의 갤럭시노트7 판매 중지가 생산 일시 중단의 결정적 배경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

삼성전자(005930)의 생산 중단 결정은 그야말로 급박했다. 미국 이동통신사들의 갤럭시노트7 판매 중단 입장은 지난 7일(현지시간) 외신들을 통해 기사화 됐다. 삼성전자가 10일 오전 생산 중단을 결정하면서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은 주말 8~9일 이틀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수조원의 돈이 오가는 생산 중단이라는 큰 문제에 대해 이틀 안에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결단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생산 중단과 관련해서는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보고가 들어 갔을 것”이라며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삼성전자가 큰 결정을 앞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생산 중단을 결정한 것은 판매 재개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재고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만약 갤럭시노트7을 조기 단종 시킨다고 가정했을 때 그 피해액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도 깔려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이번 생산 중단 결정과 관련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했을 때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유추해볼 수 있다.

먼저 미국 정부와 사업자들과의 합의를 통해 갤럭시노트7의 판매를 재개할 수 있다. 이 경우 갤럭시노트7 구매자가 갤럭시노트7 이외에 갤럭시S7이나 다른 제품을 요구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을 다른 제품으로 교환해줘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여폰을 제공한 뒤 내년에 출시되는 갤럭시S8 교환권을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CNN은 버라이즌, AT&T, T모바일, 스프린트 등 4대 이동통신업체가 갤럭시노트7 리콜과 관련, 이 제품 외에 다른 스마트폰으로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KSTP는 10월 8일(현지시간) 미네소타 주 파밍턴의 한 여학생이 소지한 갤럭시노트7에서 갑자기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정말 배터리만의 문제인가…“갤럭시S8에 악영향 우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생산을 재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현재와 같은 상태로 갤럭시노트7 판매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최악의 경우 2차 리콜이 필요하지만, 2차 리콜을 할 경우 리콜 피해액은 물론 삼성전자의 품질 신뢰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전자(005930) 측은 이번 사건이 배터리만의 문제라고 설명해왔으나, 스마트폰 설계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날 경우 생산 중단 기간이 길어져 갤럭시노트7 판매 시기를 완전히 놓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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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내년 3월 출시 예정인 ‘갤럭시S8’의 판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번 배터리 문제를 일으킨 만큼 소비자들이 작은 문제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실적에 갤럭시노트7 관련 리콜 비용을 털고 가려고 했던 것도 리콜 사태의 장기화를 염려한 전략이다.

갤럭시노트7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연쇄적으로 부품업체의 피해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갤럭시노트7에 부품을 공급하는 한 협력사 관계자는 “보통 부품 협력사의 경우 안정된 생산을 위해 1~2개월치 자재를 공급받아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아직 단종에 대한 얘기가 없지만 단종이 될 경우 부품업체들의 피해가 너무 크고, 이 점에 대해 부품사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갤럭시노트7은 삼성전자의 상반기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7의 주요 기능에 ‘홍채인식’ 기술을 더해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만 예약 가입으로 40만대가 팔렸고, 미국에서도 지난 9월 2일 리콜 발표가 나기 전까지 약 2주만에 100만대가 판매됐다.